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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 “무조건적인 믿음 경계하고, 사유하라”

  • 교학
  • 입력 2021.10.14 14:15
  • 수정 2021.10.15 19:06
  • 호수 1605
  • 댓글 1

‘2021 오대산 문화축전’ 화엄선문화연구소 제1회 명상세미나서
달라이라마가 한국 사부대중에게 강조한 ‘21세기 불자’의 조건
“불교 믿지 않는 사람이 가르침에 대해 묻는다면 답할 수 있어야”

“부처님에 대한 믿음에 앞서 가르침을 사유하고 탐구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21세기 불자’는 가르침을 면밀히 살필 줄 알아야 해요.”

세계인들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14세(1935~)가 등장하자 한국 사부대중이 각자의 화면 앞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2021 오대산 문화축전’ 마지막날인 10월10일. 이곳은 제4교구본사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가 최근 발족한 화엄선문화연구소(소장 자현 스님) ‘제1회 국제명상세미나’의 온라인 현장이었다. 사부대중은 달라이라마에게 시대의 지혜를 구하고 연구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이날 달라이라마가 건넨 당부는 명쾌하고 간결했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경계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사유하고 탐구할 것. 이것이 불법을 따르는 ‘21세기 불자’의 기본 자세라고 설명했다. 목소리에 담긴 의도도 분명했다. 면밀한 사유를 통한 배움이어야 부처님 가르침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 생겨난다는 의미였다.

“우린 그동안 전통적인 수행법을 따랐습니다. 예불과 명상을 했고, 부처님 명호를 불렀습니다. 한국도, 티베트도, 일본도, 중국도요. 하지만 오늘날은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이제는 공부하고 배워야 합니다.”

달라이라마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엔 ‘이가 없는 잇몸’ 비유였다. 예불·명상·삼매·염불로만 수행하는 건, 이가 없는 잇몸으로 음식을 씹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견과류와 같은 딱딱한 가르침을 소화하려면 단단한 이가 필요하고, 이는 가르침에 대한 논리적 사유에서 시작된다고 전했다.

이는 탈종교가 가속화된 시대, 불교가 해야할 새로운 역할을 염두에둔 발언으로도 읽혔다. 2011년 달라이라마가 발간했던 ‘Beyond Religion’(종교를 넘어)에 담긴 가르침과도 결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간 달라이라마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넘어 인류를 연결하는 도덕적 가치로서 본성(spirituality)을 강조해왔다. 신 중심의 세계관을 넘어서라는 의미기도 했다. 뒤이어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불교는 유지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달라이라마는 한국 불자에게 한 가지를 더 당부했다.

“만약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 묻는다면 답을 해줄 충분한 준비가 돼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죠. 저는 여러분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사유하고 이를 통해 실상을 분명히 알아가는 21세기 불자가 돼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연금술사가 금을 자르고 쪼개고 태워 감정하듯 부처님 가르침을 대해달라는 간곡한 당부였다. 또 애정어린 충고였다.

어렸을 적 경험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다. 달라이라마는 스승들 도움으로 논전을 배우고 암기했던 경험을 전하며, 자신의 수행을 살피는데 오늘날까지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간중간 인도 용수(Ngrjuna) 보살의 ‘중론’과 그의 제자 월칭(Candrakrti) 보살의 ‘입중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 한국 불자들이 나란다대학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나란다대학에서 전해진 가르침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앞선 2000여년 동안 수많은 수행자가 그랬듯, 가르침에 모순이 있는지 살핀 후 따르라고 조언했다. 사실 달라이라마가 이날 화면에 등장하자마자 한국 사부대중에게 건넨 첫 마디도 “제 말이라도 맹신하지 말고 반드시 탐구하고 조사한 뒤 들으라”였다.

이타심을 일으킨 순간에도 그저 일으켜야 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어떻게’ 이러한 이타심이 일어났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탐구와 사유, 관찰과 조사. 달라이라마는 4가지 단어를 계속 반복했다. 이렇게 사유하는 자세가 부정적 감정을 직시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화가날 땐 ‘감히 나에게 이렇게 하다니!’라며 나를 세우고 견고히 만들게 되죠. 하지만 고요한 상태에서 사유해보면 ‘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의 몸, 나의 말, 나의 마음이라는 생각은 부정적 감정이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마음 근본에 나라는 게 자리하고 있는지 끊임 없이 의문을 가지세요.”

달라이라마의 법문이 끝나자 다양한 질의가 이어졌다. 월정사 연수국장 해조, 기획국장 월엄, 문화국장 대온,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교육국장 선공, 열린선원청중 지욱 스님은 수행과 소임에 대한 마음가짐부터 성취에 대한 수행자의 태도 등 그간 담아뒀던 고민과 호기심을 솔직하게 물었다. 

이날 첫 질문은 해조 스님이었다. 스님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스님들 소임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하며, 유튜브·복지관·문화유산·템플스테이 등 여러 역할을 해내면서 수행과 소임이 균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달라이라마는 “소임 역시 수행의 일부”라고 답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건 ‘동기’라고 강조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본인의 명예나 부를 위해서가 아닌 상대가 더 나은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한 동기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흥미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월엄 스님은 뇌신경과학의 발달로 불교수행의 계량화가 어느정도 가능해졌다고 전하며, “존자께선 과학기술이 수행의 어디까지가 측정 가능하고, 또 어디까지가 한계라 보시냐”고 물었다. 

달라이라마는 우리 의식이 거친단계부터 미세단계까지 이뤄져 있다고 전한 후, 거친 단계로서 의식은 오늘날 뇌신경 과학자가 가늠할 수 있겠지만 깊은 삼매에 든 수행자의 미세한 의식은 뇌와 무관한 상태라 어떠한 감지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만약 오대산 월정사에 살고 있다면 어떻게 수행하고 무엇을 포교하겠느냐는 질문도 등장했다. 대온 스님의 호기심에 달라이라마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보리심(방편)을 어떻게 일으키고 반야바라밀(지혜)을 어떻게 닦아야 할지 차근차근 전할 것 같습니다. 저는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보리심을 일으킨 후 실상에 대해 탐구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던 보여지는 건 허상이고 실제 존재하는 건 없음을 가르칠 것 같습니다.”

질의가 모두 끝나자 사부대중은 각자의 화면 앞에서 합장 반배를 올렸다. 달라이라마와의 짧은 명상 시간을 가진 후 대담은 마무리 됐다.
세미나에 앞서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명상이 시대적 요구이긴 하나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지니면서 공감하고 치유할만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겠다 생각해 ‘화엄선문화연구소’를 발족했다”면서 “앞으로 시대흐름에 맞춘 사상적 담론을 제시하고 대중들과 소통하며 불교 문화를 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05호 / 2021년 10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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