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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일수록 볕이 그리운 법이죠”

기자명 김형섭
  • 사회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자제정사 노인 돌보기 ‘10년’ 손 인 순 씨

부도 후 호화주택서 사글세로 ‘전락’

포장마차 운영하며 봉사활동 ‘진력’


흔히 말하는 ‘폼’ 나는 삶이었다. 잔디 깔린 정원에 75평짜리 초호화 주택, 고급 세단 그리고 가정부. 나이 40에 접어든 손인순(50·사진) 씨는 소위 상위 ‘1%’만이 누릴 수 있다는 특권은 모두 누렸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신앙생활을 하며 자신과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아가면 그뿐인 안온한 삶이었다.

적어도 97년 늦은 가을까지는 그러했다. 그러나 남편의 부도로 그의 삶은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부도 통보 후 정확히 한 달 만에 20평 남짓한 사글세방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가까운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얻은 방에서 시부모를 포함한 일곱 식구는 난생 처음 ‘칼잠’을 자야만했다.

<사진설명>늘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손인순 씨. 주의에서는 그를 '아름다운 여장부'라고 부른다.

그는 ‘자살’을 떠 올렸다. 그러나 시름에 잠겨 있는 남편과 시부모 그리고 두 자녀를 두고 차마 모진 마음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는 삶의 희망을 잃은 남편을 대신해 거리로 나서야 했다. 그리고 일곱 식구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한때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호위호식 했던 그였지만 일용직 인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 마다할 수가 없었다.

자신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식구를 위해 등이 휘어라 일을 했다. 그는 몸이 아파도 걸을 수만 있다면 일을 나갔고, 기대어 잠을 청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그러나 사회는 매정했다. 그의 수입으로 일곱 식구 끼니 해결도 쉽지 않았다.

몸이 지치고 힘들 때면 일하지 않는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그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밑바닥 인생을 자청했다. 그리고 일용직보다 돈벌이가 조금 낫다는 이유만으로 ‘길거리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포장마차가 다 그러하겠지만 지금 근사한 포장마차를 공짜로 줄 테니,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본다면 무조건 ‘NO’라고 답하겠습니다.”

포장마차로 일곱 식구가 지금까지 살수 있었지만 단호히 다른 일을 선택할 것이라는 그는 여자의 몸으로 거리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 그리 녹녹치만은 않다고 털어놓았다.

“과부상이 아닌데 과부가 됐어 어쩌누. 얼굴이 그리 고운데 이리 험한 일을 어찌 하누.”
그는 날마다 찾아오는 중년 신사가 자신의 처지를 걱정해 주는 듯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를 걱정해주던 중년 신사의 본 뜻은 그것이 아니었다.

“세상엔 힘들이지 않고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고생을 사서 하누. 그쪽 처지가 딱한 것 같으니 내 좋은 일자리 소개 시켜 주리다.”

그가 건 낸 것은 ‘00 룸살롱’ 명함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00원 짜리 팔아 언제 돈 벌래, 따라 오면 금방 부자 되게 해줄게.”
반말은 기본이고, 성희롱은 하루걸러 한번 꼴이었다.

“포장마차를 하면 다들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봐요.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이렇게 할까봐, 정색을 하고 달려든 적도 적지 않죠.”

그러나 그를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한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도 큰 힘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평생을 믿고 실천해온 신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94년부터 도반들과 함께 화성 자제정사를 찾아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새로운 인생관을 갖도록 했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가졌기에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애환을 함께 나누면서 나눔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는 봉사를 시작한 94년 5월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있다. 행여 빠지는 일이 있다면 다음날 혼자라도 자제정사를 찾아 봉사를 해오고 있다.

“하루는 팔순을 넘긴 할머니가 제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괜찮다. 인생이 원래 그런 기다. 가끔씩 밑도 쳐다보고, 내 어떻게 살았는지 한번 돌이켜보면서 사는 게 인생이지’라고요.”

할머니의 말을 통해 원망과 후회로 가득 찬 나날을 보낸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아직도 ‘가진 자’라고 생각해온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진 자, 취미생활로 봉사를 시작한 그였지만 이들과 함께 울고 웃은 지난 10년 동안 참으로 소중한 것을 깨달았다. 인생은 억만금의 돈을 모으는 것보다 작은 실천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평범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고되더라도 늘 돌아오는 첫째 주 일요일이 기다려집니다. 이번 주에는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는 간식을 준비해 갈까 합니다.”

힘들고 고되더라도 이들과 맺은 불연(佛緣)은 절대 놓고 싶지 않다는 그에게선 자신을 올곧게 살수 있게 해준 ‘감사’와 다시 한번 도약하려는 ‘의지’가 묻어있다.

그는 최근 일자리를 잃었다. 구청의 노점상이 불법영업 단속으로 얼마 전 포장마차를 그만 두었다. 그러나 절망이란 희망을 위한 과정일까. 그에게 새로운 희망이 찾아온 것이다. 봉사활동을 함께 한 도반들의 도움으로 작은 가게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불자가 불법(不法)으로 돈을 벌어 늘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늘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살아갈 생각입니다.”

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살아가는 손인순 씨. 그래서 주위에서 그를 ‘아름다운 여장부’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여장부는 봉사를 결코 그만 둘 수 생각이 전혀 없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화성=김형섭 기자 hs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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