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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하]

기자명 윤청광

조실 스님이 아낙과 한방 쓴 까닭

경허 큰스님이 서산의 천장암에 계실 때의 일이다.

하루는 경허 큰스님의 형이신 천장암 주지 태허 스님이 인근에 사는 갈산 김씨네 49재를 올리기 위해 장을 크게 보아다가 온갖 떡과 과일을 푸짐하게 진설해 놓았다. 이 당시만 해도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때라 동네에 큰 제사나 잔치가 있다고 하면 떡과 과일을 얻어먹기 위해 인근 마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드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사진설명>경허 스님이 누더기 한 벌로 보임하며 주석했던 천장암.

천장암에서 아무날 아무시 갈산 김씨네 49재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인근 마을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천장암으로 모여들었다.


산 사람에 공양물 보시

법당 안에 차려진 온갖 떡과 과일, 동네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쓰다듬으며 군침부터 삼키고 있었다. 이윽고, 49재를 올리기 위해 태허 주지 스님이 법당으로 들어오고 경허 큰스님도 법당 안으로 들어섰다. 지극정성으로 49재를 올려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갈산 김씨네 가족들도 엄숙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막 49재를 올리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법당 밖에 구름처럼 몰려와서 법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을 한바퀴 둘러보고 난 경허 큰스님이 느닷없이 법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시더니 아직 제사도 지내기 전에 떡과 과일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들고는 법당 밖에 서있던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닥치는 대로 나눠 주는게 아닌가.

주지 태허 스님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아직 제사도 지내기 전에 떡과 과일을 나눠줘 버리다니!.”

상주들도 어안이 벙벙해서 할말을 잃고 있었다. 이 때 경허 큰스님이 한 말씀하셨다. “제사는 바로 이렇게 지내는 게 제대로 지내는 것입니다. 영가께서 극락 왕생하려면 좋은 일, 착한 일을 많이 베풀어야하는 법이거늘, 여기 모인 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떡과 과일을 보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이 공덕으로 영가께서는 반드시 극락왕생 하실 것이오.”

이 말씀을 듣고 난 상주들은 기쁜 마음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경허 큰스님께 합장 배례했다.

경허 큰스님은 제자 만공을 데리고 탁발을 나가시곤 하였다. 어느 해 여름 두 스님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탁발한 곡식을 걸망에 짊어지고 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탁발을 하느라 돌아다녔으니 몸은 고단하고 걸망은 무거웠다. 젊은 만공이 먼저 지쳐 경허 큰스님께 통사정을 했다.

“스님, 걸망이 무거워서 더 이상 걸어가기가 힘듭니다. 잠시만 쉬었다 가시지요.”
경허 큰스님이 제자 만공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중에 한가지를 버려라.”
“두 가지 중에 한가지를 버리라니요?”
“무겁다는 생각을 버리든지, 아니면 걸망을 버리든지 하란 말이다.”
“에이 참 스님두, 하루 종일 고생해서 탁발한 곡식을 어찌 버리란 말씀이십니까요? 아 그리구 무거운 건 무거운건데 그 생각을 어찌 버립니까요?”

경허 큰스님은 휘적휘적 앞서가기 시작했다. 제자 만공이 허겁지겁 숨을 헐떡이며 뒤따라 갔다.

“스님, 정말 숨이 차서 그렇습니다. 잠시만 쉬었다 가시지요.”
“저 마을 앞까지만 가면, 내 힘들지 않게 해줄 것이니 어서 따라 오너라.”

제자는 마을 앞까지만 가면 힘들지 않게 해준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스승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마을 앞에는 우물이 있었고 그 근처 논밭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 아낙이 우물에서 물을 길러 물동이를 이고 스님들 앞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경허 큰스님이 느닷없이 그 아낙에게 달려들어 입을 맞추어 버렸다.


도망칠 적에도 무겁더냐?

에그머니나! 아낙이 비명을 지르며 물동이가 박살이 났다. 이 모습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이 손에 손에 몽둥이를 들고 삽을 들고 괭이를 들고 “저 중놈들 잡아라!” 외치며 달려왔다.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자 만공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죽어라 뛰었다. 경허 큰스님은 벌써 저만치 앞서서 달아나고 있었다.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달렸을까.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저만치 솔밭에서 경허 큰스님이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허 너도 용케 붙잡히지 않고 예까지 왔구나.”
“스님, 속인도 해서는 안될 짓을 왜 하셨습니까요?”
“그래, 그건 그대 말이 맞다. 헌데 도망쳐 올적에도 걸망이 무겁더냐?”
“예에?”
그 순간 만공은 깨달았다. 모든 것이 마음의 장난이라는 것을…



인연 없는 중생은 어쩔 수 없구나

경허 큰스님이 가야산 해인사의 조실로 계실 때의 일이다. 경허 큰스님은 이미 곡차와 육식을 거리낌없이 들고 계시는 터라 젊은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이러쿵 저러쿵 시비가 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북풍한설이 몹시도 몰아치던 날 수건으로 얼굴을 뒤집어쓴 어느 젊은 아낙이 경허 큰스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날부터 경허 큰스님은 그 아낙과 한방을 쓰고, 공양도 그 아낙과 겸상으로 드셨다. 수행자들 사이에 다시 말이 많아졌다. 아무리 도통한 큰스님이시기를 곡차에, 육식에 이제는 여색까지 탐하시다니, 이건 너무 하신게 아닌가!

<사진설명>해인사 퇴설당의 경허 스님 친필 현판.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자 제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스승께 읍소했다.

“스님, 제발 그 여자를 그만 내치시옵소서.”
제자들이 하두 이렇게 읍소를 하자, 드디어 방문이 열리고 문제의 그 아낙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아낙은 나병에 걸려 코도 없고 얼굴도 문드러진 중환자였다. 그 아낙은 울면서 말했다.

“큰스님께서 따뜻한 방에 재워주시고, 따뜻한 밥 먹여주시고 고름까지 닦아 주셨으니 이제 곧 죽어도 애한이 없사옵니다.”

그러면서 그 아낙은 정처 없이 떠났다. 그리고 그 후 경허 큰스님도 걸망하나 메고 해인사를 떠나면서 말했다.

“인연 없는 중생은 별 수 없구나…”



윤청광/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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