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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성구 새긴 연하장’ 3년째 최종화 거사

기자명 남수연

“새해 인사 佛音으로 대신합니다”

1년에 8000장…“聖句가 최고 인사”

“올해엔 전단지 필요한 곳 많기를…”


지금이야 많이 줄었지만 불과 4~5년 전만해도 해가 바뀔 때면 어김없이 연하장이 오고 갔다.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멋들어진 글씨체의 한문 한 구절과 ‘새해에도 가정에 화목과 만복이 깃드시길 어쩌구~’하는 내용들. 간혹 보내는 이가 몇 구절 육필을 남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구누구 배상’이라며 보내는 이 이름까지 일괄 인쇄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쯤되니 뻔한 내용의 연하장은 누가 보냈는지만 확인하고 한번 쓱 열어본 후 서랍 속으로 직행하는 그저 그런 우편물이 된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올해 68세를 맞은 최종화 거사가 보내는 연하장은 전혀 다른 경우다. 새해 받은 첫 우편물 속에서 불교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으니 그 자체로도 매우 뜻깊은 선물이 되곤 한다.
<사진설명>항상 수 십장의 포교전단지를 지니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단지를 나눠준다는 최종화 씨.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을 정년퇴임하고 경기도 평택에 있는 운전면허학원 이사장으로 지금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최 거사는 매년 300여 장의 연하장에 불교의 가르침을 요약해 적은 포교 전단지를 넣어 함께 발송해오고 있다. 올해로 3년째다.

“이 나이 먹어 뭐라도 하나 하고 싶었지.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는지 이 생에 부처님 말씀을 만났으니 조금이라도 그 은혜를 갚아야 할텐데, 능력에 닿는 일이 이것뿐이더라구.”

정착 최 거사는 별일 아니라는 말투다. B4 크기의 포교전단지엔 앞뒤에 걸쳐 한글과 영어로 각각 ‘불교란 무엇인가’ 적혀있다. 불교는 어떤 종교이며 부처님이 탄생하시며 선언하신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그리고 수행이 왜 중요한지 등이주 내용이다. 각 주제마다 책을 한 권씩 써도 모자랄 만한 내용들이 아닌가. 최 거사는 용케도 그것들을 종이 한 면에 담아내고 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전단지 아래 적혀 있는 ‘포교 전단지가 필요하시면 연락바랍니다’라는 문구다. 최 거사의 개인 핸드폰 전화번호까지 나란히 적혀있다. 최 거사는 연락이 오면 어디든 기꺼이 전단지를 보내준다. 수 십장이 되든 수 백장이 되는 요청한 만큼 보내지만 돈은 한푼도 받지 않는다. 그에겐 포교가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 신념은 하루 아침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최 거사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우리나라 근대 재가 불교운동 역사를 온 몸으로 함께 해 온 인물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1964년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최 거사는 서울대 법대불교학생회, 일명 법불회의 창립 멤버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학 재학시절이었던 1955년부터 57년까지 현 대한불교 청년회의 전신인 조선불교청년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1956년엔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신도회 부회장을, 또 같은 해에 대각회를 창립해 초대 총무로도 활동했다. 1957년 불교 잡지 좥불교세계좦를, 1964년부터는 타블로이드판 월간 신문 좥불교 시보좦를 발행했다. 1967년부터는 현 조계종 기관지의 전신인 ‘대한불교신문사’를 인수한 고 이한상 거사와 함께 3년간 편집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내 어머니가 무척 신심이 깊으셨지. 아들이 학교 다니면서 불교학생회 활동도 하고 불교 잡지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을 매우 대견해 하셨어. 덕분에 어머니가 가장 큰 후원자가 되어주셨지. 하지만 어머니는 역시 어머니셨어.”

누구보다도 아들의 불교 활동을 적극 지원해주셨던 어머니셨지만 ‘성공한 아들’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그저 평범한 어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 서울대 법대를 함께 졸업한 동기들이 검사가 되고 판사가 돼서 이른바 잘 나가는 사회인이 되어 속속 나타나자 최 거사의 어머니는 물론 가족들도 그가 그런 평범한 사회인으로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이미 그에게는 부양해야할 가족과 아이들이 생기고 있었다.

대한불교신문 편집부장을 마지막으로 그는 불교계 활동에서 사실상 손을 떼게 된다. 이후 그는 취직을 하고 정년퇴임 때까지 성실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자리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의 마음마저 불교에서 떠난 것은 아니었다. 85년 직장 내 불교 모임인 보리수회를 창립해 직장 불자들의 신행 활동 공간을 만들었다. 정년 퇴임 후에는 곧바로 집필 작업에 들어갔다. 평생 불자로 살아왔지만 불교란 무엇인가를 짧고 간단하게 설명하기자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설명해줄 자료가 필요했지. 식구들이 모두 불자이긴 하지만 ‘불교란 이런 것이다’하고 자신 있게 설명하기가 어렵더라구. 그래서 불교에 대해 정리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원고지 수십 장이던 것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요약되더니 한 3년만에 딱 한 장으로 줄어들었지. 그게 지금의 저 전단지야.”

매년 인쇄되는 전단지는 약 8천장. 이 전단지를 최 거사는 지금도 손수 배포하고 있다. 일요일이면 어린 손자와 함께 관악산이나 북한산 입구를 찾아 등산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그가 즐기는 휴일 일과다. 부처님 오신날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조계사 등 주요사찰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그의 가방 속엔 늘 수 십장의 전단지가 들어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며 또는 지방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등 어디든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건넨다. 요즘엔 주변에서 전단지를 보내 달라는 부탁도 심심찮게 들어온다. 전단지가 더 필요하다는 부탁이나 불교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며 질문하는 이들의 전화를 받을 때면 그는 더 없는 보람을 느낀다.

“나이도 많고 모아 놓은 재산도 없지만 전단지 만들어 나눠주는 일 정도는 다행히 할 수 있어서 시작했을 뿐이야.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괜히 쓸데없는 짓 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내 신념이야.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 법을 만난 다는 것만큼 뜻깊은 일이 없으니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도 없는 셈이지.”

요즘도 최 거사는 틈나는 대로 문장과 내용을 수정해 나간다. 전단지를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게 될 수 있길 바라며 최 거사는 지금도 “전단지 좀 보내주세요”라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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