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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김영수 (1884~1967)

기자명 권오영

종립 동국대 초대학장

1967년 1월10일 입적

동국대 초대학장 포광(包光) 김영수 거사는 근·현대 한국불교학의 초석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한국불교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한국불교사를 종합 정리한 『한국불교사상논고』라는 유작을 남겼는가하면 ‘화엄사상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해 한국불교학계에 화엄학 연구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1894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12세가 되던 해 1895년 경남 함양 영원사에서 환명 정극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포광은 여러 스님들로부터 체계적으로 불교학을 배우게 된다.

『초발심자경문』을 시작으로 『서장』,『능엄경』,『기신론』, 『화엄경현담』등 전통강원 교육을 모두 수강한 포광은 1906년 그의 나이 26세에 영원사 강주(講主) 소임을 맡으면서 학승으로서의 길을 걷게된다. 이후 남원 실상사, 법주사 주지를 역임하기도 했던 포광은 36세 되던 1918년 불교중앙학교 교수로 초빙돼 『능엄경』,『사분율』, 불교사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대중포교 위해 환속 단행

학승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던 포광은 그의 나이 40세 되던 해 돌연 승복을 벗고 환속을 감행하게 된다. 불교가 산중불교로 남아 있기보다는 세속에서 대중들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동국대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하기 시작한 포광 거사는 특히 한국불교학의 정체성을 세우는 논문들을 발표해 후학들에게 불교학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 불교학계의 상징

해방과 함께 다시 동국대 교수로 취임한 그는 3년 뒤 초대학장에 취임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한국불교학계의 상징적인 존재로 우뚝 서게 된다.

<사진설명>포광 김영수(아랫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거사가 동국대 학장 재직시절 동료 교수들과 함께 한 야유회 기념사진.

이후 6·25전쟁을 피해 전라도로 내려온 포광은 전북대와 원광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끊임없이 불교학자들을 양성해 갔다. 특히 그는 한국불교학의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삼국, 고려, 조선시대로 나눠 한국불교사를 정리했고 이를 강의함으로써 한국불교사를 정립하는 초석을 세우기도 했다. 또 화엄사상에 대한 연구가 없던 한국불교학계에 1959년 백성욱 박사 논문집에 발표한 ‘화엄사상연구’는 현대 한국 화엄학 연구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평생을 한국불교학 발전을 위해 학승으로서 다시 학자로서 노력했던 포광 김영수 거사는 1967년 1월 10일 세수 84세로 입적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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