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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인(德人)을 그리며

기자명 혜민 스님
진정한 덕(德)은 드러내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을 발한다


새해가 지나고 겨울방학 중간쯤에 들 무렵이면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은 다음 학기 등록금 걱정을 서서히 하게 된다. 물론 은사 스님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 공부하는 스님들도 계시지만 내가 아는 학인 스님들의 대부분은 여기저기서 조금씩 보태어 주는 보시를 모아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승려라는 직분 자체가 부처님 당시부터 남에게 구걸해서 먹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하더라도 승려이기 전에 사람인지라 남에게 학비를 구걸하는 것이 어떤 때는 참으로 죽기보다도 싫을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스님은 70년대에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신분을 속이고 아침엔 신문을 돌리고 밤에는 학생 과외 공부를 가르치면서 생활하셨다는 분도 보았다. 물론 최근에는 20∼3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사찰이 많이 물질적으로 풍족해지고 종단과 각 사찰에서도 장학회가 결성되어 공부하는 학인 스님을 돕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학비가 필요한 스님들로써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최근 들어 대학에서 공부하시는 스님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분 말씀이 장학금을 각 사찰 주지 스님이나 장학회에서 주는 형태가 꽤 다양하다는 것이다. 일 예로 어느 사찰 주지 스님이 장학금을 주신다 하여 오라고 해서 찾아갔더니 그 날이 마침 보살계를 수여하는 날이었단다. 그 사찰의 신도 분들에게 보살계를 주는 불사를 돕고 나서야 전 신도가 모두 보는 앞에서 한 명씩 나가서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장학금을 받고 나니 한편으로는 주지 스님과 신도님들께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디 가서 일을 하고 일당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그와 반대가 되는 경험을 했는데 한국에서 IMF가 터져서 미국에서 공부하기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을 때 한국의 어느 스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 스님은 별 말씀 없이 단지 ‘얼마가 필요하냐?’ 라는 질문만을 하셨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나에게 장학금을 송금해주셨다. 나는 지금도 그 스님만 생각하면 감사함에 눈물이 자꾸 난다.

내 주변을 살펴보면 복(福)이 많은 분들은 종종 보게 되는데 의외로 덕(德)까지 고양하신 분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덕이란 은혜를 베풀면서 품행을 바르게 하거나 도를 행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들었다. 보시행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선행을 내세우지 않을 때 덕은 더 쌓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의 일은 돌고 돌기 때문에 도움을 받은 사람이 또 언젠가는 도움을 주게 되기 마련이다. 덕을 많이 쌓으신 분 같으면 그 분이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서로 도우려고 한다. 하지만 평소에 자신의 복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만 할 뿐 은혜 베푸는 것에 인색했던 사람은 급박해진 후에야 비로소 큰 돈을 써가면서 도움을 요청해도 사람들의 마음은 잘 동요하지 않는 법이다. 요즘처럼 날이 추울수록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덕인(德人)이 더욱 더 그리워진다.


혜민 스님/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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