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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계진 씨의 ‘달라이라마 친견기’

기자명 이계진

“나는 성하의 ‘눈물’을 보았다”

‘맑고 향기롭게’ 이사이면서 불자 방송인으로 잘 알려진 이계진(58·법명 향적) 선생은 지난해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다람살라 남걀사원에서 봉행 된 ‘달라이라마의 한국 불자를 위한 첫 대중 법회’에 부인 홍화식, 아들 두용 씨 등과 함께 동참해 성하의 법문을 경청했다. 그는 서울 상도동 약수암에서 꾸준히 신행 활동에 진력하고 있는 독실한 불자이다. 이 글은 이계진 선생이 달라이라마의 법회에 동참하고 성하를 친견한 뒤 느낀 소감을 정리해 『법보신문』에 보내온 것이다. <편집자>

<사진설명>달라이라마가 불교TY 대담 프로그램 제작에 앞서 질의자로 나선 이계진 씨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 사진제공=이두용 씨.

참으로 오랜만에 긴 여가를 내어 먼, 먼 길을 다녀왔다. 그것도 아내와 아들이 함께 한 뜻깊은 여행길이었다. 방송 30년을 회향하는 의미에서도 큰 비중이 있었던 여행이었으니 참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나의 삶을 중간 결산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다람살라로 가는 길은 그 분을 뵐 기대로 설레지 않았다면 포기하고 싶을 만큼 멀고 교통 또한 어려웠다. 이 짧은 지면에 그런 어려움이나 숙소 혹은 음식 등에 대한 불편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도 없는 사치한 투정이 될 것 같아 생략한다.


친근함-위엄 동시에 느껴져

달라이라마께서 하신 법문은 『입보리행론』에 관해서 였다. 출국 전 미리 우리말로 번역된 책자를 읽고 갔고 그곳 다람살라의 남걀사원에 모인 삼천여 순례자들을 위하여 한국어로 혹은 영어로 통역되어 그 법문의 내용이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존자의 말씀대로 보리심이 무엇이며 보리심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일깨우고 행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달라이라마에 대한 첫 느낌은 ‘항상 웃음이 있는 천진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은 그곳에 모인 우리 한국의 불자들과 세계 각 국(특히 서양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을 한 순간에 사로잡을 수 있었다. 꼭 어린 시절에 뵙던 집안 할아버지 같은 친근한 표정에서 ‘알 수 없는 위엄’까지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법문의 시작은 무겁지 않았으니, 추운 법당 안의 분위기를 공감하는 장난기 어린 행동으로 문을 열었다. 숨을 죽이며 기대했던 첫 말씀은 법문 장소가 추우니 이렇게 해야겠다며 법복 자락을 머리에 둘러쓰고 달마 선사 같은 모습을 연출하며 즐거워하시어 법당은 웃음이 가득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때로 웃고 때로 엄숙하고 때로 마음으로 절절하게 전해지는 법문이 계속됐다.

그러던 사흘째 법문 날! 알아 듣지 못하는 티베트어를 듣고 있던 우리는 떨리고 울음이 섞인 존자의 법문을 들으며 귀를 의심했다. 달라이라마께서 울며 법문을 하시는 것이었다. 일순간 법당 안은 숙연해졌고 여기저기서 고개 숙여 훌쩍이는 소리와 모습으로 가득했다. 알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나도 내 가족도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 통역을 하던 티베트 스님도, 파란 눈의 순례자들도, 순차 통역을 기다리던 우리 스님도 그리고 영문도 모르는 한국의 불자들도 모두 낮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이 무슨 일인가!

법문이 끝난 뒤에 나는 유학중인 그 곳의 한국 학생에게 그 순간의 분위기를 궁금해했다. 왜 존자께서 법문 중에 눈물을 보이셨는지.

놀라웠다. 달라이라마께서는 보리심을 계속 이야기하시던 그 순간에 ‘보리심을 가지라’는 말씀을 스스로 하시면서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보리심이 얼마나 고귀한 것이며 또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당신도 모르게 그렇게 체면도 없이 눈물을 보이신 것이라는 것이었다.

수천 수만 번의 법문을 하셨을 터이며 끊임없이 보리행을 하셨을 터인데 존자께서는 그 순간에도 스스로 격하셔서 눈물을 보이셨다. 보리심에 대한 존자의 말씀을 새겨듣던 우리들에게 그 이상의 감동이 어디 또 있을 것인가.

내 마음 속의 결론은, 보리심을 일깨우고 생각하고 행하는 것은 우리의 표현으로 하자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만 끊임없이 그렇게 하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새로 각성했다.

법문을 모두 들은 마지막날 한국에서 온 불자들을 위하여 따로 존자 친견의 기회가 마련됐는데 작은 불상을 기념으로 주시면서 일일이 손잡아 주시고 눈맞추시며 축복까지 해주셔서 멀고먼 여행길을 날아온 우리들은 감격했다.


중생고 떠올리며 체면도 잊고…

마치 이론을 공부하면 현장실습을 하듯 우리는 마침 짜여진 프로그램도 아니었는데 그곳에 계신 청전 스님의 안내로 가까운 산록에서 명상 수행하시는 법 높으신 수행 스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길은 멀고 또 험했는데, 그곳 그 황량하고 척박한 산비탈에 돌집(?)을 짓고 사시는 수행 스님들의 모습은 가슴이 메어지는 아름다움과 감격이 함께 있었다. 삶의 겉모습은 가난과 옹색함과 누추함 그 이하였지만 수행 스님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거룩함과 행복감은 이 세상에 그 누구의 모습과도 견줄 수 없었다.

우리를 맞이하시는 모습은 돌아온 탕아를 반기듯 하셨고, 땟국이 흐르는 손으로 우리의 뽀얀 손을 잡으실 때는 그 따뜻한 체온이 사랑처럼 전해졌다. 서로 통하지 않는 짧은 대화는 통역이 필요하지 않았고, 더 이상의 말이 없어도 우리는 너무나 행복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아니 더 좁혀서 우리 가족의 달라이라마 친견법회 여행은 마무리가 됐다. 존자의 눈물을 본 충격과 감동의 여행은 무엇을 남겼는가.

물질의 행복은 어디까지이며 물질의 끝은 무엇인가. 얼마나 더 갖고 얼마나 더 쓰고, 얼마나 더 먹고 얼마나 더 이겨야 한다는 것인가. 스스로 생각생각하며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 번의 운동으로 평생의 건강이 유지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우리는 매일 운동을 하듯 보리심을 생각하고 보리심을 내어 이타의 불자행을 해야 할 것이다.

<사진설명>이계진 씨와 부인 홍화식 씨와 아들 두용 씨.

소중한 나의 가족들과 함께 한 여행은 각인의 가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감동과 교훈이 그 삶의 무게만큼 있겠지만, 적어도 가장인 위치의 나로서는 그 어떤 여행에서보다 큰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이다. 아마 굳이 표현하자면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아름답게 살아야한다’는 것일 터이다.

달라이라마의 건강을 기원한다. 그리고 불자임이 행복하다.


이계진/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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