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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동네의 고약한 인심

기자명 윤청광
색다른 통계 한가자가 발표된 것을 보고 씁쓸한 생각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라는 단체에서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접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서울특별시 25개 구청 가운데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개 특구’의 모금실적이 가장 저조했던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알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부자동네의 인심이 가장 고약했다는 얘기가 된다.

공동모금회가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기업성금을 제외하고 지역 케이블TV와 길거리 모금을 통해 접수한 이웃돕기성금은 총 28억 2852만원이었는데, 그 가운데서 모금액수별 순위를 살펴보면 1위는 성북구, 2위는 동작구, 3위는 도봉구, 4위는 양천구, 5위는 중랑구였고 인구 1인당 모금액을 살펴보면 성북구 644원, 종로구 598원, 동작구 528원, 도봉구 515원, 용산구 489원으로 상위권을 차지했으나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강남구는 겨우 310원, 송파구 251원, 서초구는 61원으로 모조리 하위권을 맴돌았다.

이 통계만 본다면 부자들이 사는 동네일수록 참으로 인심이 야박한 지경을 넘어 고약하기 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어처구니없는 통계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10여 년 전 BBS에 ‘고승열전’을 집필하면서 불국사 조실로 계셨던 월산 큰스님께서 들려주신 옛이야기가 생각난다. 월산 큰스님이 젊은 수행자시절, 은사이신 금오 큰스님을 모시고 운수행각을 다니면서 겪은 경험담을 들려주셨는데 스님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탁발을 다녀보니까 밥술깨나 먹고 살만한 부잣집에서는 식은 밥 한 덩이도 얻어먹기가 힘들더라구. 헌데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찾아가면 먹던 보리밥일망정 듬뿍듬뿍 덜어주는거야. 눈물이 핑 돌고 목구멍이 막힐 만큼 감동을 받았어. 왜 그런지 아시겠는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배고픈 설움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겪어봤기에 불쌍한 사람을 보면 따뜻한 정으로 먹던 식은 밥일망정 주저 없이 나눠주지만 배고픈 설움을 모르는 부잣집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가엾이 여기기는커녕 업신여기는 못된 마음에 가득하기 때문이지.”

1950년대·1960년대의 가난한 시절, 월산 큰스님이 겪으셨던 그 씁쓸한 추억담이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오르내린다는 2000년대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재현되다니 이것은 과연 희극인가, 비극인가.

우리 불자들은 수행자나 재가자나 할 것 없이 ‘자비의 실천’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고 강조하며 산다. 아니 어쩌면 불교에서 ‘자비’와 ‘보시’를 빼버린다면 그것은 이미 불교가 아닐지도 모른다.

『법보신문』의 발행인 스님과 사장 스님이 매월 흔쾌히 내어놓으시는 거마비 300만원을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나누어드리는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 선정회의를 하면서, 우리는 늘 죄인이 되는 심정을 가눌 길이 없을 정도로 이 땅에는 단돈 10만원으로도 한 달을 살고 있는 버려진 할아버지 할머니와 10대 청소년 가장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몇 십억, 몇 백 억을 들여 대작불사를 일으키는 일도 좋고, 몇 천 만원 짜리 대들보, 몇 백 만원 짜리 기둥을 시주하는 것도 좋고 몇 백 만원 몇 천 만원씩 범종 불사금을 내는 것도 좋지만 엄동설한에 굶주린 채 떨고 있는 저 버려진 할아버지 할머니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따뜻한 나눔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더 급한 일이 아닐까.


윤청광/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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