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맹스러움으로 삿된 기운 물리치는 호법신장

  • 새해특집
  • 입력 2021.12.29 19:29
  • 수정 2021.12.29 23:05
  • 호수 1615
  • 댓글 3

[호랑이와  불교]

기품 있고 당당한 존재…우리 민족의 얼·혼 대변한 영물
경전·창건설화·불화 등에 자주 등장해 어리석음 일깨워

십이지신상 중 호랑이. 만봉 스님 작품.
십이지신상 중 호랑이. 만봉 스님 작품.

2022년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해’다. 검정색에 해당하는 천간 ‘임(壬)’과 호랑이에 해당하는 지지 ‘인(寅)’이 만났다. ‘흑호’는 전설이나 야사에 간혹 등장하는 영물로 알려져 있어 임인년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호랑이는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우리민족과 친숙한 동물이다. 일제강점기까지 한반도의 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깊은 숲속에서 서식하며 오래 전부터 조상들의 삶과 함께했다. 그렇기에 민간에서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와 기록이 적지 않다. 구술과 기록으로 대표되는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선 1000건, ‘조선왕조실록’에는 700건 이상의 관련기사가 수록돼 있다. 기품 있고 당당하며 용맹한 호랑이는 때론 우리민족의 얼과 혼을 대변했다. 

현대에 이르러 호랑이는 호돌이, 수호랑이 같은 마스코트나 엠블럼, 게임 속에 등장해 친근한 동물로 받아들여지지만, 역사적으론 사람과 가축에 해를 가하는 두려운 짐승이었다. 삼국시대엔 호랑이를 두려워해 용과 같이 신성시했으며, 조선시대엔 호랑이가 급증해 “조선사람들은 반 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 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사람을 사냥한다”고 할 정도였다. 태종 16년(1416) 10월에는 호랑이 사냥을 위한 특수부대 ‘착호갑사’가 편성됐으며, 정약용이 쓴 행정지침서 ‘목민심서’(1818)에는 고을의 수령이 제거해야 할 것에 호랑이를 포함할 정도로 그 피해(호환)가 심각했다. 

호환에 대한 두려움은 숭배로 이어졌다. 범접할 수 없었던 호랑이에게 잡귀를 물리치는 영물이라는 지위를 부여하고 산군(山君), 산신(山神), 산신령(山神靈) 등으로 부르며 영험한 신으로 섬겼다. 이는 한국불교에도 영향을 미쳐 사찰의 창건설화와 산신각의 탱화와 같은 문화재에도 호랑이가 나타난다.

수많은 경전에서 호랑이는 용맹함을 간직한 수호신으로 비유되며 때로는 자비심을 가진 동물로 등장한다. ‘비유경(譬喩經)'에서는 ‘신통제일’ 목건련존자가 전생에 호랑이로 태어나 바라나시 숲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금강명경(金剛明經)’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전생에 굶주린 새끼호랑이를 살리려 자신을 희생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전에 따르면 과거 석가모니부처님이 전생에 눈이 수북이 쌓인 어느 날 골짜기 밑에서 일곱 마리의 새끼를 낳은 어미 호랑이가 굶주려 죽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대로 두면 어미와 새끼들이 모두 죽을 게 분명했고, 이를 애처롭게 여겨 자신의 몸을 먹여 여덟 생명을 살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미 호랑이 앞에 쓰러져 몸을 바쳤으나 호랑이는 취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호랑이가 살생의 업을 짓지 않게 하려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호랑이는 때때로 잔꾀에 속는 어리석은 동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중아함경(中阿含經)’에는 500마리의 돼지를 이끌고 길을 가던 돼지왕이 호랑이를 만나는 이야기가 전한다. 호랑이가 길을 막아서자 돼지왕은 “자신의 조부 때부터 입어온 갑옷을 입고 싸우겠다”고 호랑이에게 제의한다. 호랑이가 허락하자 돼지왕은 자신의 몸에 분뇨를 발라 냄새를 독하게 풍기며 호랑이와 맞선다. 여유를 부리던 호랑이는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도망친다. 호랑이는 돼지 500마리를 홀로 막아설 만큼 강력하고 두려운 존재이나 꾀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동물로 묘사된다.

호법신장으로서의 모습은 사찰창건설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경주 호원사터에는 여인으로 변신한 호랑이와 김현이라는 청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현이 흥륜사를 찾아 탑돌이를 하다 한 여인과 눈이 맞았다. 여인과 정을 통한 그는 헤어지기 싫어 집까지 따라갔고 그가 사실 호랑이임을 알았다. 당시 세 오빠가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인은 김현에게 자기의 목숨을 거두고 공을 세우라고 설득한다. 김현은 한사코 거절했으나 여인이 호랑이의 모습으로 도성에 나타나 사람을 해치자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이게 된다. 높은 벼슬을 하사받은 김현은 호랑이를 죽인 자리에 여인의 넋을 기리는 절을 지었는데 이것이 호원사라고 전해진다.

경북 영주시 희방사 창건설화에도 ‘은혜 갚은 호랑이’가 나온다. 신라 선덕여왕 때 두운(杜雲)대사라는 덕망 높은 스님이 있었다. 두운 스님이 동굴에서 수행하던 중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 눈물을 흘리기에 살펴보니 목에 비녀가 꽂혀있었다. 스님이 이를 뽑아주자 호랑이는 감사의 표시로 멧돼지를 물어다 놓았다. 스님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호랑이는 한 여인을 데려다 놓았다. 스님은 기절한 여인을 극진히 간호해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감동한 낭자의 아버지 유호장은 감사의 표시로 스님이 수행하던 곳에 ‘기쁜 소식을 전해준 방위’라는 뜻의 희방사를 세웠다.

서울 호압사에는 호랑이가 웅크린 형태인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지어졌다는 창건 설화가 전해진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궁궐을 짓는 도중 몸의 절반이 호랑이인 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건설을 방해해 근심에 빠져있었다. 그가 상심하며 침실에 들었을 때 한 노인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남쪽에 있는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호랑이는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하니 산봉우리 밑에 사찰을 지어 기운을 누르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태조는 이를 무학대사에게 전해 ‘호랑이를 누른다’라는 뜻의 호압사를 세우고 궁궐을 완성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호랑이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 역할을 맡아오며 불교와 꾸준히 연을 맺어왔다. 2022년 임인년 새해에는 용맹하고 당당한 호랑이기운을 듬뿍 받아 평안함을 가득 누릴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고민규 인턴기자 mingg@beopbo.com

[1615호 / 2022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