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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인정할 사찰숲 순례코스, 불자들 손으로 발굴해 내야죠”

  • 무진등
  • 입력 2022.01.21 22:50
  • 수정 2022.01.22 10:33
  • 호수 1618
  • 댓글 1

전영우 문화재위원장·국민대 명예교수

산림학자 최초로 문화재위원장 당선…“문화‘재’에 맞춰진 초점, 문화‘유산’으로 바꿀 것”
세계화 목표로 경제개발 한창이던 90년대, 자원으로만 인식하던 숲에 인문학 관점 제시
벌거벗었던 민둥산, 승가 공동체 노력으로 울창하게 가꿔내…“한국 사찰숲 가치 무한대”

낭만을 노래하던 1970년대. 천문학과 학생들은 “같이 별 보러 가자”며 사랑을 고백했고, 산림학과를 다니던 70학번의 한 남학생은 ‘새하얀 자작나무 껍질’에 수줍은 마음을 끄적였다. 흐드러진 나뭇잎과 부드러운 숲 내음을 유독 좋아하던 그가, 가장 아끼던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네는 방식이었다. 

자연을 사랑하던 이 소탈한 학생은 50여년 뒤 제30대 문화재위원장이 됐다. ‘소나무 박사’ ‘사찰숲 전문가’로 잘 알려진 산림학자 전영우 문화재위원장(71) 얘기다. 그는 취임 후 첫 인터뷰에서 눈을 반짝이며 또박또박 말했다.  

1월3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 연구실에서 전영우 문화재위원장을 만났다.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 사찰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함께 있는 복합유산으로 그 가치가 무한대”라고 강조했다.
1월3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 연구실에서 전영우 문화재위원장을 만났다.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 사찰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함께 있는 복합유산으로 그 가치가 무한대”라고 강조했다.

“문화‘재’가 아니라 문화‘유산’입니다. 유산은 앞서 살았던 누군가로부터 물려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 산물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문화유산의 한 측면인 ‘재산’에만 무게를 두고 있어요. ‘재(財)’라는 이름으로 60여년을 관리해왔지만 이젠 바뀌어야 합니다.”

전 위원장은 지난해 8월 문화유산에 대한 열린 안목과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을 호평 받아 제30대 문화재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내년이면 설립 60주년을 맞는 문화재위원회에서 역사학이나 고고학, 서지학이 아닌 ‘산림학자’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연과학분야 전문가가 위원장을 맡은 것도 이인규 서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에 이어 그가 두 번째다. 

전 위원장이 산림학과를 선택한 건, 어렸을 적 아버지 영향이 컸다. 3남2녀의 셋째였던 그는 아버지의 든든한 ‘심부름꾼’이었다. 형·누나는 학업을 위해 일찍이 상경했고, 동생들은 마냥 어렸다. 그랬기에 아버지는 나무에 물을 줄 때마다 전 위원장을 불렀다. 아버지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는 ‘호다닥’하고 뛰어나가 아버지를 도왔다. 든든한 아버지와 무엇인가를 돌보는 일이 좋았다. 까아만 흙에서 연두빛 새싹이 생명력을 뿜어낼 때면 어린 그의 마음에도 묘한 활력이 돌았다. ‘어쩌면 내가 화초를 돌보는 게 아니라 화초가 나를 돌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심부름값’을 톡톡히 받은 셈이다. 

고려대 산림학(임학)과에서 학·석사과정을 졸업한 그는 육종과 조직 배양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유학을 택했다. 1980년부터 7년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산림생물학을 전공했다. 귀국한 이듬해인 1988년부터는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는 미국과 달리 ‘육종 전문가 연구그룹’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 여러 해 동안 공부에 진전이 없었다. 새로운 각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답을 준 건 어린 시절 자연에게서 배운 행복이었다. 숲과 나무가 주는 행복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순 없을까. 1992년 그가 ‘숲과문화연구회’를 결성한 이유였다. 전 위원장은 동료들과 수많은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시민을 위한 녹색체험, 숲속 작은 음악회, 시낭송회, 아름다운 숲 탐방행사 등. 

세계화를 목표로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1990년대에도 전 위원장은 ‘숲과문화연구회’를 통해 그간 자원으로만 인식돼 오던 숲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풀어냈다. 1998년부터는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자 ‘생명의 숲 가꾸기’ 운동에 앞장섰고, 이듬해에는 국민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숲해설가 양성교육을 실시했다. 

전 위원장은 2019년 6월19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해 숲과 문화에 대해 강의했다.
전 위원장은 2019년 6월19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해 숲과 문화에 대해 강의했다.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나눈 숲과의 기억을 ‘숲과 한국문화’(1999·수문)로 섬세하게 풀어냈다. 덕분에 책은 발간 직후부터 문화체육관광부·한국출판인회 등 여러 기관으로부터 우수도서로 뽑혔다. 일본어판(2004)에 이어 2010년 영어로도 속속 출간됐다.

탄탄대로 같던 그의 인생에도 한 차례 고비는 있었다. 2002년 화창한 봄은 그에게 너무나 냉혹한 계절이었다. 학교에서 회의를 하던 도중 쓰러진 것이다. 병원에서 깨어나자 들려온 말은 “대장암”이었다. 횡행결장에 생긴 악성 종양으로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살고 싶었다. 오대산 적멸보궁에 올라 복받쳐 오르는 설움에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즐거운 일을 하자.’ 그렇게 마음 먹었다. 무거운 생각을 덜어내자 해야할 일이 선명해졌다. 혼자 연구실에 앉아 그림을 그렸고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불렀다. 조각난 나무를 주워 손으로 깎아 색도 입혔다. 그의 책장에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의 조각 인형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 위원장이 만든 나무인형 조각.
전 위원장이 만든 나무인형 조각.

해오던 연구에도 온 힘을 다했다. 2002년 3월 암 진단을 받은 후, 완치된 2006년 12월까지 그가 써낸 책은 10권. 여기에 토마스 파켄엄의 ‘세계의 나무-경이로운 대자연과의 만남’(넥서스·2003) 번역까지 더하면 모두 11권이다. 그는 책을 쓸 때마다 ‘이 한 권만은 제대로 마치자’고 생각했고, 그 한 권 한 권이 쌓여 그 만의 독창적인 연구 분야를 만들어 냈다. ‘사찰숲’ 연구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시작됐다.

전 위원장은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사찰숲 전문가다. 1993년 ‘숲과문화연구회’ 회보에서 통영 안정사의 조선시대 소나무 정책에 대해 다뤘지만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2007년이었다. 사찰숲 연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계산송광사사고’부터 몇몇 사찰의 완문 등 각종 사료를 탐색했고, 그 연구성과는 ‘절집 숲’(운주사·2011), ‘한국의 사찰숲’(모과나무·2016), ‘송광사 사찰숲’(모과나무·2019)에 고스란히 담겼다. 

같은해 12월6일에는 사찰숲이 자연문화유산으로서 갖는 의미를 조명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공로로 문화재청으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같은해 12월6일에는 사찰숲이 자연문화유산으로서 갖는 의미를 조명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공로로 문화재청으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사찰산림을 지켜냈던 스님들 노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영조 21년(1745) 나라 전역의 숲이 헐벗게 되자 국용재(國用財)를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해  조정이 사찰숲에 주목했다. 조선 왕실의 이 공식 기록은 조선후기 온 나라 숲이 황폐해졌을 당시 사찰만이 제대로 숲을 지키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증언한다. 

숲을 지키기 위한 사찰의 노력은 1920년대 편찬된 ‘조계산송광사사고’ 산림부에서도 잘 드러난다. 송광사는 불사를 할 때 반드시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경치를 보존했고, 송광사 임야는 730여년의 오랜 세월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수호해온 곳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울창한 사찰숲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벌거벗었던 민둥산을 승가공동체 노력으로 가꿔낸 거죠. 스님들은 수백년 동안 숲을 적절히 활용했어요. 오늘날은 무조건 보호만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고 있죠. 하지만 아니에요. 불교계의 지난한 역사를 살펴보면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선에서 지혜롭게 활용한 흔적을 볼 수 있어요. 이것이야 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의 현장이었죠.”

불교계와의 인연은 2015년 ‘법보신문’ 연재를 계기로 더 짙어졌다. 신문에서 전 위원장의 글을 읽은 전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해인사 주지)이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총무원 간부 스님들 대상으로 교육을 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다. 전 위원장은 기쁜 마음으로 화답했다. 강의도 호평이었다. 그는 연이어 총무원 일반직 종무원(재가불자) 특강에 초청받았고, 이후 조계종 교육원 승려연수교육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전 위원장은 사찰숲의 역할이 과거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찰숲은 매년 조계종 1년 예산의 22.5배나 되는 1조800억원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쉽게 계량되지 않는 정신적 부분까지 산정한다면 그 가치는 무한대로 늘어난다.  국토의 1%. 어쩌면 좁을지도 모를 사찰숲 면적에 국가 자연유산 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식물과 명승이 10%이상 몰려있고, 사찰숲을 제외하면 존립 자체가 어려운 국립공원도 다수다. 내장산 국립공원의 39.8%, 가야산 국립공원의 39%, 월출산 국립공원의 40.6% 면적이 각각 내장사, 해인사, 도갑사의 사찰숲으로 구성돼 있다. 사찰이 핵심적인 산림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숲을 광배(光背)처럼 두르고 있는 대한민국 사찰들. 유네스코 복합유산 지정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세계인이 인정할 순례길만큼은 우리 손으로 발굴해 내야하지 않겠어요?”
“숲을 광배(光背)처럼 두르고 있는 대한민국 사찰들. 유네스코 복합유산 지정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세계인이 인정할 순례길만큼은 우리 손으로 발굴해 내야하지 않겠어요?”

“현재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을 ‘문화유산’ ‘자연유산’,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합쳐진 ‘복합유산’으로 분류해 지정관리하고 있어요. 세계유산 선정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사찰은 복합유산이죠. 빛바랜 단청, 청아한 도량, 긴 세월을 품은 불상·탑·승탑도  모두 좋아요. 하지만 ‘문화’유산에 초점을 맞췄던 관심을 이젠 ‘자연’유산으로 돌려보면 어떨까요.”

그는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불교계에 요청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고 했다. 바로 ‘대한한국 사찰숲 순례길’을 발굴하는 일. 사찰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이자 지방을 연결하는 거점이었다. 숲속 곳곳에 살아있는 마애불은 순례코스의 하나였을지 모른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순례길은 현재 단 두 곳. 예수의 제자 야곱(스페인어로 산티아고) 무덤이 있는 ‘갈리시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일본 긴키지방에 솟아있는 ‘기이산지의 사찰들과 참배길’이다. 

“숲을 광배(光背)처럼 두르고 있는 대한민국 사찰들. 유네스코 복합유산 지정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세계인이 인정할 순례길만큼은 우리 손으로 발굴해 내야하지 않겠어요?”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18호 / 2022년 1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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