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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만리장성 넘어 둔황으로

기자명 이재형

만년설 머리에 인 치롄산맥의 품에 안기다

<사진설명>랴오둥 산하이관을 떠난 만리장성이 거대한 용처럼 꿈틀대며 이곳 서역의 사막, 치롄산맥의 발치에 초라한 머리를 쳐들고 있다. 사진은 만리장성의 끝 자위관.

밝은 달은 천산에 떠오르고/고향은 아득히 구름 바다 너머에 있네
긴 바람 소리 옥문관을 휩쓸고 가네
우리 군사는 백등산으로 밀려나고/오랑캐는 청해를 넘보는데
예로부터 전쟁터에서/살아 돌아온 사람 보지 못하였네
삭막한 변방의 병사들/고향 생각에 지친 얼굴들
이 밤 높은 누각 위에서도/한숨소리 그치지 않는구나.

明月出天山 蒼茫雲海間
長風幾萬里 吹度玉門關
漢下白登道 胡窺靑海灣
由來征戰地 不見有人還
戍客望邊色 思歸多苦顔
高樓當此夜 歎息未應閑

-이백(李白)의 관산월(關山月)-


주취안(酒泉)에서 하룻밤. 호텔측에서 제공하는 40도 넘는 독한 술대접의 후유증이 새벽까지 입안에 자욱하다. 도시 이름이 괜히 ‘술샘’이 아닌 듯싶다.

오늘의 목적지는 둔황(敦煌), 비록 400km에 불과하지만 꼭두새벽부터 서둘러 길을 나섰다. 괜히 여유부리다 길에서 날이 저물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거리는 자동차와 자전거로 넘실댄다. 예로부터 이곳은 지리적인 요충지로 알려져 왔다. 동쪽으로는 중원, 서쪽으로는 둔황, 남쪽으로는 치롄(祁連)산맥, 북쪽으로는 고비사막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탑승한 스님들과 함께 차안을 법당삼아 아침예불을 시작했다. 삼귀의, 예불문, 천수경, 법문, 축원문, 반야심경, 사홍서원 등. 아침 법문은 선방수좌 효일 스님이 들려주었다. 바퀴벌레에게조차 매일 먹이를 줄 정도로 불살생과 자비행을 실천했던 학봉 노스님의 얘기였다. 50분가량의 법회를 마치니 밖은 아침햇살이 물비늘처럼 반짝인다.

차창 밖 풍경이 온통 모래투성이 사막이다. 멀리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치롄산맥이 웅장하다 못해 위압적으로 서있다. ‘치롄’은 흉노의 말로 ‘하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척박한 곳에서 살아야 했던 흉노, 위구르, 돌궐, 몽골 등 북방민족들에게 치롄산맥 너머 땅은 하늘 너머 세계처럼 풍요로움의 상징이었을지 모른다. 그 치롄산맥이 란저우에서 시작된 허시저우랑(河西走廊)을 병풍처럼 감싸며 서쪽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달리는 띠’라는 뜻의 허시저우랑도 란저우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부드러운 구릉이나 푸릇푸릇한 잡초들 대신 거친 모래밭과 억세풀보다 질긴 낙타풀만이 황량함을 더하고 있다.


차 안에서 매일 조석예불

법현, 현장, 의정, 혜초 스님 등 수많은 구법승들이 이 험하디 험한 길을 걸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무언가가 솟구친다. 구법승들이 아니더라도 이 길 위에서 스러져갔을 수많은 뭇 생명들. 그들이 모두 극락왕생했으면 하는 바람이 저절로 인다.

<사진설명>만리장성의 잔해들. 치롄산맥 아래서 풀을 뜯는 양떼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1시간가량 달렸을까. 만리장성의 잔해들이 서역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만리장성하면 떠올리게 되는 바다링(八達嶺)의 웅장한 모습과는 판이하다. 오랜 세월의 무게에 무너져 내린 장성들은 그 기능들을 상실해버린 채 폐허물처럼 늘어서 있다.



‘천하웅관’자위관 답사

만리장성은 중국 역대 왕조가 변경을 막기 위해 축조한 대성벽으로 총 연장 6350km에 걸쳐 동서로 뻗어 있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다. 지난 198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리장성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가 국경에 쌓은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진시황제는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하고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간쑤성(甘肅省) 남부로부터 둥베이(東北) 지구의 랴오허강(遼河) 하류에 이르는 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이중 절반 이상이 전국시대 연(燕)이나 조(趙) 등이 쌓은 장성을 이용했다. 한나라 무제 때 허시저우랑을 흉노로부터 지키기 위해 장성을 란저우 북방에서 둔황의 서편 위먼관(玉門館)까지 연장했으나, 장성이 현재의 규모로 된 것은 명나라 때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북방을 완전히 장악한 청나라 이후에는 그 군사적 기능을 잃고 단지 지역을 나누는 행정적인 경계선에 불과한 형편이다.

최근 중국 신후아통신(新華通信) 등 보도에 따르면 매년 10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만리장성이 관광객의 증가로 훼손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관리가 소홀한 지역에서는 일부 농민들이 집담이나 돼지우리를 짓는데 성벽을 이용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랴오둥(遼東) 산하이관(山海館)을 떠난 장성이 거대한 용처럼 꿈틀대며 이곳 서역의 사막, 치롄산맥의 발치에 초라한 머리를 쳐들고 서 있는 것이다.


장성 곳곳에 ‘역사의 무게’역력

120m 간격으로 세워진 망루들.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먼 고향을 떠나와 이곳에서 외로움에 떨어야 했을까. 이 지역은 수천 년간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던 전쟁터였다. 낯선 피리와 북을 울리며 쳐들어오는 수많은 적들, 그 앞에서 다시는 고향의 아내와 자식을 보지 못하리라 직감했을 병사들의 두려움은 또 얼마나 컸을까. 실제 천수백 년 한 병사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가 몇 해 전에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 병사들은 성밖으로 나가 싸움을 하고 돌아올 때면 성벽에 돌을 던졌다고 한다. 성벽에 부딪힌 돌소리가 메아리쳐 되돌아오면 성이 비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사진설명>자위관 입구 곳곳에 낙타를 끌고 나온 중국인들. 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드는 동안 선두차는 어느새 자위관(嘉 關)의 입구를 향하고 있다. 햇살이 눈부시다 못해 따갑다. 여름 한 낮에는 섭씨 30~40도를 오르내린다는 가히 살인적인 더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위관 입구에는 말과 낙타를 끌고 나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자위관은 14세기 명나라 때 몽골군을 토벌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대단히 웅장하다. 자위관이 ‘천하웅관’이라 불렸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폭 120km의 허시저우랑이 이곳에 이르면 대단히 좁아서 여기를 거치지 않고 그 누구도 서역이나 중원으로 들어올 수 없는 통로의 목이다.

거센 모래바람 속에 우뚝 서있는 자위관. 길게 뻗은 성벽과 망루를 다시 한번 천천히 눈에 담은 후 차에 올랐다. 이제 둔황, 둔황으로 가자. 짐을 한껏 싣고 서역으로 향하는 과적차량들을 좇아 돈황으로 내달렸다. 멀리 치롄산맥과 만리장성이 끊임없이 멀어졌다가 다시 다가오곤 한다.


글·사진=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양가죽 두르고 열흘을 꼬박 벌판에서

치롄산맥 만리장성의 양치기

자위관을 얼마 앞두고 만리장성 아래 차를 댔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준비해온 만두와 컵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있을 때였다.

멀리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뛰어오더니 점심을 먹는 우리 곁에 서성거리는 것이 아닌가. 일행 중 한 명이 음식을 주자 먹거리는 충분하다며 옷을 들춰 보인다.

허리춤에 말린 양고기 등과 물통이 보인다. 양가죽을 둘러 쓴 그는 이곳에서 양을 지킨다고 했다. 34세라는 그의 나이가 믿기지 않지만 해맑은 미소가 아름답다.

400여 마리의 양을 형제들과 돌아가며 돌본다는 그는 한 달에 열흘 이상은 이곳 벌판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그러면 잠은 어디서 자나요?”
“저쪽 언덕에 가면 굴이 있어요.”
차가운 바람에 얼고 뜨거운 햇살에 쭈글쭈글해진 검은 손. 그 손이 치롄산맥 아래를 가리킨다.
“외롭지 않나요?”
“…”
잠시 후 뒤쪽을 돌아본 그가 양이 다른 곳으로 간다며 만리장성 쪽으로 뛰어간다.

갑자기 ‘나는 누구고, 삶은 무얼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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