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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수옥 스님(1902~1966)

기자명 안문옥

비구니 교육 확립한 강백

1966년 2월 7일 입적

화산 수옥 스님은 금룡(金龍)·혜옥(慧玉) 스님과 함께 한국불교의 비구니 3대 강백으로 후대 비구니들의 지표로 추앙받는 스님이다. 오늘날 비구니를 대표하는 니승이라면 대부분이 그의 제자라 할 정도로 비구니계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비구니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해 평생을 후학 양성과 주력해 온 수옥 스님은 16세에 출가해 덕숭산 수덕사 견성암에 몸을 담았다. 스님은 그 해에 법희(法喜)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했으며 다음 해에 비구 청월(淸月)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다.

견성암에서 수행에 전념하던 스님은 19세가 되던 해 전문강원이 있는 해인사를 찾아 고경화상(古鏡和尙) 밑에서 2년 동안 사집과를 수료했다. 28세 봄이 되던 해, 스님은 서울 서대문 응선암에서 대은(大隱) 스님을 강사로 사교과와 대교과를 마치고 그 해 4월 해인사에서 용성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와 보살계를 수지, 5년 동안 수선안거(修禪安居)를 성만했다.


선·교 겸한 비구니 스승

그러나 스님은 이에 안주(安住)하지 않았다. 1934년 3월,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 스님은 경도시(京都市) 묘심사의 불교종립학교 미농니중학림(美濃尼衆學林)에 입학, 우수한 성적으로 3년 간 전문과정을 마쳤다.

1940년 10월, 스님은 다시 수덕사 견성암에서 7년 동안 참선 수행에 몰두했다.

46세부터 서울 보문사 불교강원 강사로 비구니 교육에 힘쓰고, 51년 충남 덕산의 보덕사 주지로 취임했다. 55년에는 천성산 내원사 주지로 부임받고 그 해 4월에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선출돼 4대를 역임하며 선두에서 교계를 이끄는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종회의원-주지 두루 섭렵

선(禪)·교(敎)·율(律)을 두루 겸비하고 사찰운영에 있어서도 남다른 재주를 지닌 스님은 현재까지도 많은 비구니 스님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높은 덕망과 원력은 어느 비구승 못지않다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자신의 심경을 한시(漢詩)로 자주 표현하곤 했던 스님의 한시는 후학들에 의해 좬화산집(華山集)좭이라는 책으로 엮어 출간될 정도이다.

1966년 2월 7일, 스님은 “잎 떨어진 나무에 봄이 오니 숲이 온통 향그리워, 온화한 바람 단비에 나라가 풍년드네, 인생은 한 세상 몽환의 나그네인데, 헛된 망상 비우자 해탈이 도인일세.”라는 해탈시를 읊으며 홀연히 떠났다.


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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