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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호랑이 - 하

호랑이 위해 목숨 보시한 바라문

보시바라밀 행하는 과정에서 
불효하는 윤리적 충돌 발생
마하살타 행위는 중생 고통에 각성으로 이어진 타자의 윤리

호랑이는 고대 인더스문명의 동물인장(paśupati seal)에도 등장한다. 인도호랑이는 ‘벵갈호랑이’로 불리는 고양이과 ‘표범속 티그리스 티그리스(Panthera tigris tigris)’를 말한다. 군집생활을 하지 않고 개별적인 사냥 생활을 한다. 호랑이의 사냥 성공률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사냥감을 못 잡는 날이 더 많고 약 10일쯤 굶는 것도 흔한 일이다. 사냥에 성공하면 한꺼번에 포식하고 기근에 대비한다. 수컷 호랑이가 호랑이 새끼를 잡아먹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새끼를 먹어치우면 암컷의 발정기 때 번식에 유리하고 먹이와 영역의 경쟁자를 미리 없애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족포식(同族捕食, cannibalism)은 대형 육식동물에게는 흔한 현상이지만 암호랑이가 자신의 새끼를 포식하는 행위는 극히 드물다.

암호랑이의 동족포식, 특히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는 행위는 아사 직전에만 발생한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가 극한의 고통 상황에서만 취하는 행동이다. 아잔타 16굴에는 이런 상황에 처한 암호랑이(vyāghrī)가 그려진 불교벽화가 있다. 한 바라문이 굶주린 암호랑이가 새끼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응급한 상황을 알아차리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아래의 호랑이가 바라문의 몸을 먹어치우는 장면이다. 이 그림의 이야기는 범본(梵本) ‘자따까말라(Jātakamāla)’의 ‘비야기리 자따까(Vyāghrī-jātaka)’와 ‘금광명경(Suvarṇaprabhāsottama -sūtra)’의 내용을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서 호랑이를 위해 목숨을 보시한 바라문이 부처님 전생이며, 이를 목격한 제자 아지따(Ajita)가 바로 미륵보살의 전생이다.

범본의 호랑이 이야기는 한역경전 ‘금광명경(金光明經)’과 ‘현우경(賢愚經)’의 마하살타(摩訶薩埵, Mahāsattva) 왕자 이야기로 확장되어 널리 알려진다. ‘금광명경’에서 마하살타는 세 왕자 중 막내 왕자이다. 형들과 산책을 나선 왕자는 일곱 마리의 새끼를 낳고 굶주린 암호랑이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이를 본 맏형은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으로 제 몸보다 더한 것이 없느니라(一切難捨不過己身)’라고 말하고, 둘째 형은 자신의 몸을 아끼는 것은 ‘지혜가 적기 때문이다(智慧薄少故)’라고 한다. 이에 막내 왕자는 자신의 몸이 탐진치(貪瞋痴)에 의해 수없이 윤회하며 헛되이 죽어가기보다는 공덕을 쌓아 참된 몸을 성취하겠다는 일념으로 호랑이 옆에 눕는다. 호랑이가 너무 여위고 기운이 없어 자신을 먹지 못하자 마른 나뭇가지로 목을 찔러 피를 내고 절벽에 올라 호랑이 앞으로 몸을 던진다.

범본과 다르게 위의 한역경전에서는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의 고통이 상세히 설명된다. 특히 마하살타의 어머니가 혼절하고 울부짖은 장면이 길게 서술되면서 슬픔을 고조시킨다. 결국 마하살타는 도솔천에서 내려와 부모님에게 슬퍼하지 말라며 안심시키기에 이른다. 여기서 굶어 죽어가는 암호랑이와 그 새끼를 구하는 보시바라밀을 행하기 위해서 자신의 부모에게 불효(不孝)를 저지른 윤리적 충돌이 나타난다. 이에 대해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보살의 부모는 자식을 잃은 까닭에 슬퍼하고, 호랑이는 보살을 죽였으므로 죄를 짓게 된다. 하지만 부모의 슬픔과 호랑이의 살생의 죄에 대해서는 그 무게를 잴 필요가 없다. 오직 보살이 보시바라밀을 원만히 성취해 복덕을 얻은 것뿐이다.”라고 한다.

아무리 동물의 세계라고 해도 굶주린 어미호랑이가 새끼를 먹으려는 장면은 큰 충격을 준다. 자따까에서 이 상황을 “하! 이것이 세상의 방식이다. 호랑이는 애정의 모든 한계를 넘어 자신의 아기를 삼키려는 욕망의 시선을 던진다. 자신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상세히 전한다. 마하살타와 호랑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보살의 사신사호(捨身飼虎)다. 하지만 이 엄청난 보시를 가져온 결정적인 장면은 젖을 물리면서 굶주림에 못 견뎌 자식을 잡아먹으려는 흉악한 본능에서 시작된다. 자연의 가장 긴급하고 불행한 상황이다. 이 현장을 목도한 마하살타의 다른 형제들이 내놓은 말들은 인간 본위의 지적 윤리를 대변한다. 윤리나 도덕은 가장 응급한 순간의 포착, 중생의 고통에 응답하는 요령, 이 모두를 고려한 성취나 증득을 고려하는 두뇌게임이 아니다. 마하살타의 보시바라밀은 중생의 고통에 역동적인 각성으로 이어진 ‘타자의 윤리’라는 점에서 주목받아야 할 것이다.

김진영 서강대 연구교수 purohita@naver.com

[1622호 / 2022년 3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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