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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수행 이재규씨 [하]

기자명 이재규
궁극적 깨달음에 대한 끝없는 회의

우곡 선사 만나 참 수행 의미 깨쳐


참선수행을 통하여 선정(禪定)의 맛이 살짝 살짝 느껴지는 순간, 수행과 현실 사이에는 자그마한 틈새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수행과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병행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라는 의식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궁극적인 마음의 평정, 깨달음이라는 것은 선택된 자들만이 가 닿는 신비스러운 곳인데, 어불성설 너 같은 중생이 감히, 네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자문자답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였다.

“수행하는 시간만이라도 마음의 평정을 얻었으면 됐지, 또 무슨 욕심, 스님들처럼 출가해서 수행을 전업으로 삼아도 마음이 여여한 사람이 많지 않은데, 너처럼 회사 다니면서, 처자식 간수해야 하고, 주변을 챙기면서, 사회인으로써…, 꿈도 꾸지 말아라! 그것은 사치스러운 너의 욕심일 뿐, 괜히 딴 생각 피우지 말고, 하는 일이나 잘 하면서 어려우면 그때그때 수행의 도움을 받으면 됐지.” 이렇게 나는 현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면서 그것을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운명처럼 우곡 장명화 선사를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수행방법입니까?”
“선(禪)은 일상(日常)이다. 특이한 모습을 주장하는 것은 낭비가 되고, 상(相)이 될 뿐이다. 수행은 보편타당한 행위와 평상심에 바탕을 둔 순수한 행(行)이자 역할일 뿐이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행은 몸과 마음으로 지어가지만, 수행의 근본은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나름대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요즈음 실상관법(實像觀法)과 내 역할로 일상(日常)을 이어가고 있다. 연기(緣起)하는 존재(存在)의 참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觀)하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淨) 간에 끊어짐 없는 선정(禪定)을 유지해 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수행이던, 그것이 일상(日常)이던, 이제 수행이란 말이나 어휘는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금 여기 이 순간, 나와 더불어 연기하고 있는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심(下心)하며 시절인연을 수용할 뿐이다.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그만이지, 제비꽃이 핌으로써 봄의 들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건 제비꽃으로선 알바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그 동안의 내 수행이 그리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험하고 힘에 겨운 일들도 많았다. 바람이 세계 불어 나뭇가지가 많이 부러지고, 까마귀떼들이 유별스레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겨울 햇살에 살짝 녹았던 땅이 찬바람에 다시 얼어붙었지만, 아파트 베란다의 매화나무에는 어린 싹이 벌써 눈을 비비고, 낙엽송 가지 밑에도 연두빛이 얇게 번지고 있는 듯 하다. 겨울 속이지만 봄을 향하는 몸짓에는 멈춤이 없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의 응고되고 황량해진 내면의 뜨락이, 촉촉해지고 부드러워져서 ‘올곧은 삶’이 꽃피어 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진통과 몸살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결국은 인연(因緣)이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공덕의 결과였다.


이재규/한국전력기술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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