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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삼과 화엄사

기자명 정병삼

하얀 잔설 깔린 마당에 서고 싶다

고3 학창시절 첫 발걸음

그 인연 그대로 ‘화엄학’공부


남도의 벌판을 싸 안고 끝이 안보이게 크게 서 있는 지리산은 그 큰 품만큼 등성이마다 골짜기마다 명찰을 품고 있다. 삼도에 걸친 넓은 품을 한 바퀴 돌며 순례하노라면 그 중에서도 장엄한 산의 기세에 어울리는 큰절 화엄사가 가슴을 꽉 채워 온다.

<사진설명>화엄사 전경.

고등학교 졸업반인 72년 어느 여름날. 친구들 몇이서 대학입시의 짓눌림에 매이지 말자고 다짐하고 한 달에 한번쯤은 바람도 쐬고 머리도 식히기로 했었다. 그 중에 기억 남는 한 가지가 제헌절 연휴를 맞아 도반 둘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 산행에 나선 길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지리산록은 힘이 넘치는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화엄사 계곡을 따라 우렁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을 벗삼아 산을 오르노라니 어느새 십대 후반의 왕성한 힘은 여느 걸음을 반이나 앞서 노고단 정상에 이르러 있었다. 산막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침에 맞는 지리산의 장엄함. 골짜기를 가득 채우며 눈부시게 하얀 구름이 온 대지를 밀고 올라오는 장관은 한 청년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리고 산을 내려와 찾은 화엄사. 정상 천왕봉은 어림짐작도 할 수 없는 저 너머에 있고 주맥을 이루는 반야봉도 노고단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거기서 흘러온 차일봉 월유봉이 바라다 보일 뿐. 그러나 어느 절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웅장한 기운이 경내에 서려 있다. 국내 제일의 전각 각황전이 그 기세에 맞춤으로 어울린다. 절 마당에 선 나그네에게 울려오는 그 역동적인 산의 기운. 아무리 큰산을 주산으로 가졌어도 아무리 수려한 주산을 병풍처럼 둘렀어도 이처럼 힘이 넘치는 도량은 이후로 전국의 명찰을 돌면서도 그다지 본 적이 없다.

혈기방장하던 그 날의 기운이 통했을까. 금생의 업으로 화엄을 공부하게 되었다. 화엄대찰을 여러 군데 찾으면서 화엄사도 몇 차례나 다시 찾았다. 그리곤 그때마다 젊은 날의 기운을 어렵지 않게 되살려내곤 한다. 비 갠 여름날의 깨끗한 빛도, 잔설이 깔린 겨울 끝자락의 청랭한 바람도, 화엄사골에서는 언제나 탄력있는 힘에 실려 도량을 장엄하고 나그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이 겨울에도 화엄사에 가고 싶다. 하얀 잔설이 청청한 소나무와 어울려 이루는 조화음을 조화의 전당 화엄사 마당에서 다시 느끼고 싶다. 각황전을 돌아올라 효대에 앉아 사자탑과 일품 소나무를 나란히 옆에 놓고 연기암으로 휘어 올라가는 산줄기를 천천히 마음에 담고 싶다.


정병삼/숙명여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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