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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배에 실려온 옛 사람의 ‘타임캡슐’

기자명 남수연
  • 불서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고대로부터의 통신』/한국사연구회 / 푸른역사

금석문 통해 고대 사회 엿보는 재미 ‘쏠쏠’


1988년 1월. 경북 울진군청 공보실에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네 개울가에서 희미하게 글씨가 남아있는 바위덩어리를 발견했다”는 울진군 봉평리 이장 권대선 씨의 제보 전화였다. 바위덩어리는 원래 인근 논둑에 있던 것으로 얼마 전 논 임자인 주두원 씨가 포크레인으로 파내어 개울가에 내다 버린 것을 이장 권 씨가 정원석으로 쓰기 위해 옮기던 도중 한쪽 면에서 희미한 글씨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신고 전화를 한 이장이나 ‘거치적거리는 바위덩어리’를 파내 버린 논임자 모두 이것이 신라사 연구에 새 장을 열며 국보 242호로 지정된 ‘울진 봉평 신라비’의 등장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던 순간이었다.

돌에 쓰이거나 새겨있는 금석문은 대부분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학자들은 목이 빠져라 금석문 발견 소식을 기다리거나 차마 기다리지 못해 발 품을 팔며 ‘글씨 있는 돌’을 찾아 전국을 헤매 다니기 일수다.

학자들이 이렇게 금석문에 열광하는 이유는 금석문이야말로 후대인에 의해 가감되지 않고 고스란히 시간을 강을 건너온 옛 사람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간혹 문헌 자료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기도 하고, 문헌 자료의 잘못을 바로잡아주기도 한다. 이러한 발견들은 고대사가 다시 씌어질 만큼 결정적인 자료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금석문에 담긴 생생한 고대의 기록을 조각배 삼아 고대인의 삶과 사상 속으로 들어가는 항해일지다. 한국고대사 연구에 있어 여전히 불멸의 텍스트가 되고 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마저 후대인들이 쓴 ‘과거형’의 후술인데 비해 금석문을 통한 고대로의 답사는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듯 생생한 현장감을 전해준다.

1948년 부여군 부소산 남쪽 기슭의 돌무더기 속에서 발견된 ‘사택지적비’는 백제 의자왕 당시의 귀족들의 문화와 불심의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66년 도굴꾼들로부터 압수한 벽돌 판 ‘해인사 묘길상탑기’에서는 신라 말 혼란한 사회의 틈에서 도적으로 변한 농민들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금석문을 통한 고대사 엿보기는 그리 녹녹한 과정이 아니다. 오랜 세월 속에 조각난 편린들을 모아 맞추며 희미해진 글자를 더듬거려 올게 읽어 내는 일도 쉽지 않으려니와 사라진 부분을 유추하기 위해 관련된 모든 고문서와 자료들을 조각을 맞춰 가는 것은 차라리 고행에 가까울 만큼 지난한 작업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 한 권의 집필에 동참한 17명 저자의 명단이 오히려 짧게 느껴진다. 14,000원.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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