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7. 조선포로 일요 스님이 아버지에게

기자명 이재형

13세 생이별…전쟁의 상처 고스란히

임진왜란 중에 끌려가

日서 수행자의 길 선택

30년만의 ‘부모전상서’


아버님의 편지를 열고 읽으려하니 감격의 눈물이 앞섭니다. 이는 하늘의 돌보심이며 신명의 도움이 아닐런지요. 주군을 찾아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곡히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주군은 오히려 가신들에게 저를 견고히 감시할 것을 명령해 새장속의 새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조만간 하늘이 무심치 않아 소자가 귀국할 수 있다면 부모님께서는 잃었던 아들을 얻고 저로서는 잃었던 어버이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보내주신 편지를 조석으로 모셔 받들겠사오니 두 분께서도 이 아들의 편지를 자식 보듯이 대해 주십시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부모님을 뵙고 그동안 쌓였던 회한을 풀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부디 천수를 누리시어 평화로운 시대에 만날 수 있을 날까지 저를 기다려 주십시오.




전쟁만큼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것이 또 있을까. 공포, 굶주림, 생이별, 그리고 죽음…. 한국사 오천년간 그 어느 시대에 전란이 없었을까만 그 중에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로 임진왜란을 꼽을 수 있다. 갑작스런 왜침과 그들의 학살로 수백만 명의 민중이 죽어갔으며, 약 10만명이 일본으로 끌려가는 생이별을 강요당해야 했다.

조선 포로였던 일요(日遙) 스님의 편지에는 전쟁의 참혹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고향, 그 고향 땅의 아버지에게 눈물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이 글에서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언젠가는 돌아갈테니 부디 기다려 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있다.

스님의 본명의 여대남(余大男). 그가 일본으로 끌려간 것은 13세 때인 1593년 7월이다. 그 해 6월말 천신만고 끝에 진주성을 함락한 왜군은 저항에 대한 보복으로 조선의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이 때 어린 여대남도 왜군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 시퍼런 칼날 앞에서 소년은 땅바닥에 묵묵히 한시를 써보였다. 당나라 유명한 시인 두목(杜牧, 803~852)의 시였다. 이에 왜장 가토 기요마사는 비범한 아이라는 생각에 죽이지 않고 일본으로 끌고 갔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것은 동시에 비극의 시작이었다. 79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다시는 고국땅을 밟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의지할 곳 없던 여대남은 어린 나이에 규슈 구마모토현의 혼묘지(本妙寺)로 출가해 ‘일요(니찌요우)’라는 법명을 얻는다. 스님은 그곳에서 열심히 수행 정진해 28세에 규슈를 대표하는 이 절의 주지로 발탁된다. 고향의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은 주지가 되고 1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일본에 다녀온 한 관리로부터 죽은 줄만 알았던 자식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편지를 쓴 것이다.

“내 나이 쉰여섯이고 너의 어미 나이 예순이 되었느니라. 넌들 오고 싶은 마음이 없으랴마는 네 몸을 네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를 이 아비는 아노라. 다행히 그곳을 빠져나와 고국에 돌아와 너를 만나게 된다면 30년 쌓인 한이 하루아침에 얼음처럼 녹아 없어지겠구나. 너는 이국땅에 있으니 부디 몸조심해 무사히 돌아오도록 하여라. 아들아, 꼭 한번 너를 만나보고 죽었으면 이 아비는 여한이 없겠노라.”

이 편지를 읽은 일요 스님은 그리움과 함께 통한의 피눈물을 흘렸으리라.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온갖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의 절망감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나중에 ‘쇼닌(上人)’이라는 존칭까지 얻을 정도로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일요 스님. 스님이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3통의 편지는 현재 혼묘지에 남아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