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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붓다의 침묵 ①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형이상학적·사변적 질문 거부

질문자가 그 질문의 답변에 대한 중대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을 때, 그리고 그 질문이 답변자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잘못된 의도를 가진 것일 때, 붓다는 침묵을 선택했다.

경전은 붓다가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아니라, 그를 괴롭히려는 의도를 가진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침묵했던 몇 가지의 경우를 언급하고 있다. 붓다의 침묵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일부 학자들은 마치 붓다가 그런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붓다는 형이상학적이거나 사변적인 질문에 대해 붓다는 답변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해 답변하더라도 질문자가 그 답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거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정성이 없을 때, 또는 그 질문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는 잘못된 것이었을 때, 붓다는 답변을 하지 않고 침묵했다. 붓다가 침묵을 유지했던 대표적 질문들은 이른바 무기(無記)로 불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주는 영원한 것인가’ ‘아니면 영원하지 않은가’, ‘우주는 유한한 것인가’ ‘아니면 무한한 것인가’, ‘영혼과 육체는 같은가’ ‘아니면 영혼과 육체는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인가’, ‘죽은 뒤에 여래는 존재하는가’ ‘아니면 여래는 존재하지 않는가’, ‘죽은 후에 여래는 존재하기도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아니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이 같은 이슈의 본질을 꿰뚫고 있던 붓다는 위대한 침묵으로 답했다.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이슈에 대해 이런저런 많은 말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언급들이 한낱 그들의 상상력에서 나온 얄팍한 수준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붓다가 침묵을 선택한 것은 그들에 대한 수천 번의 토론과 설교보다도 더 의미심장한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대적 경험에 의거해 형성해온 인류의 어휘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실체적 차원과 깊이 있는 답변을 다룰 수 없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붓다는 인간이 가진 언어의 한계가 너무 뚜렷해서 진리의 궁극에 대해 설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만일 최고의 진리세계가 절대적이라면 단순한 속세의 경험과 관계로 그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만일 사람들이 그들의 한계가 있는 사고를 가지고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앞을 못 보는 맹인들이 코끼리를 만진 후 저마다 각각의 코끼리 모습을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진리를 깨달아 알지 못한 사람에게 길을 설명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갖지 못해 하늘의 색깔조차 보지 못한 사람에게 하늘을 설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붓다는 이처럼 그에게 던져지는 모든 질문들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정신적 발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의미 없는 질문들에 대해서까지 답을 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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