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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는 발걸음』/열림원

기자명 이학종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가장 쉽고 편안한 수행법 ‘걷기’

걸음 하나하나가 ‘대자유’ 찾기


“걷기 명상은 걸으면서 하는 명상입니다.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고 천천히, 편안하게 걷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행은 우리에게 깊은 편안함을 가져다주어, 우리의 발걸음은 지구상에서 가장 안정된 이의 발걸음이 됩니다. 모든 슬픔과 불안이 사라지고 평화와 기쁨이 가슴 속에 차오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약간의 시간, 약간의 마음 다함, 그리고 행복해지고자 하는 바람만 있으면 됩니다.”-틱낫한

걷기는 불교와 매우 잘 어울린다. 걷기는 불자들에게 있어 낯설지 않다. 걷기는 불교와 딱 궁합이 맞는다. 수행자들이 즐겨하는 포행이나, 해제 철 물 따라 구름 따라 떠나는 운수객의 발길 또한 걷기의 이어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도 걷기로 시작해 걷기를 그치는 것으로 마감됐다.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을 걸었다는 탄생설화나 대각 이후 열반에 이르기까지 45년간을 광활한 인도 땅을 두 발로 유행하면서 법(다르마)을 전한 것은 걷기가 불교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한다.

걷기는 왜 그토록 중요한가. 이유는 명료하다. 걷기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니 외면했거나 잊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자동차에 몸을 싣기 시작하면서 잊어버렸던 땅의 촉감은 물론이려니와, 바닥을 기는 곤충과 조우할 수 있고, 껍질에 상처를 입은 가로수를 매만질 수 있다. 간혹 뾰족한 돌멩이가 발바닥을 찌를 때 느끼는 고통은 오랜 시간동안 잊었던 그리움이다. 걷기가 주는 소득은 이처럼 무궁무진하다. 그저 걷기만 해도 얻어지는 숱한 소득들, 걷는 사람이 미소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드는 것은 생리적 현상이 아닌 정신적인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살아갈 날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 그리하여 좀더 적극적으로 시간을 쪼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잠을 줄게 하는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가의 노하우를 엮은 것이다.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에 인생을 더 풍요롭고 값지게 살아가려면 새벽형도 좋지만, 그보다는 걷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더 많은 사물, 더 다양한 생명들과 만나는 기쁨, 그리고 내면의 자신과 만나는 환희와 보람을 걷기는 가져다준다.

걷기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던 우리에게, 어느 날 문득 나타나 그 소중함을 일깨워준 스승은 프랑스 자두마을에서 수행 중인 베트남 출신의 고승 틱낫한 스님이다. 그는 우리가 잃거나 잊어버렸던 참으로 많은 걷기의 가치들을 일깨워 주었다. 그가 펴낸 걷기 명상에 관련된 책 『미소 짓는 발걸음』은 걷기의 소중한 가치를 미려하고 잔잔한 문체로 시종일관 잘 드러낸다.

이 책의 말미에 틱낫한 스님이 산책길에서 만난 작은 조약돌을 들고는 곧 명상에 빠져드는 광경은 인상적이다. 조약돌을 주워 든 그는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붓다여, 여기에 제 조약돌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이 조약돌로 수행을 하려 합니다. 제가 노여움과 슬픔을 느끼거나 혼란에 빠질 때마다, 이 조약돌을 손에 들고 깊은 호흡을 하겠습니다. 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틱낫한 스님은 말한다. 걷기 명상은 우리의 주권, 인간으로서 우리의 자유를 되찾게 해준다고. 그러하니 우아하고 위엄 있게, 황제처럼, 또 사자처럼 걸으라고. 발걸음 하나하나가 삶인 것이니.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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