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어느 날 주인공인 사진작가 소정(추상미)이 튜블러비전(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리면서 시작된다. 시야가 계속 좁아지면서 결국엔 실명에 이를 수 있는 병이다. 그 실명이 언제 올 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삶에 직면한 소정은 유학을 포기함은 물론 애인 지석과도 결별한다.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천착해 셔터를 눌러 보지만 늘 초점은 빗나가 있다.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보지만 가족사이의 끝없는 불화를 보고는 신라 고도 경주로 달려간다. 경주의 한 고분 벽화를 촬영하던 중 벽화 속 여인이 비상하는 환상을 본 소정은 하늘로 날고 싶다는 마음에 비행조종 교육을 받는다. 교관이 없는 바람 부는 날 소정은 비행하지만 곧 강으로 추락한다. 목숨만은 건진 소정은 추락한 비행기의 한 날개를 의지한 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 흐름 속에 감정은 철저히 절제돼 있다. 이 영화가 주는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정의 고통을 관객이 즐기거나 혹은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고통을 내 안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관조해 보는 것이다. 과연 내게 이런 현실이 닥치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행 이전의 나와 불행 이후의 나는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가? 영화는 우리에게 ‘삶의 본질’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관람하며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소정의 애인 지석이 보낸 메일이다. 바로 서산대사가 입적 직전 읊은 시 한수.“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소정의 절망과 서산대사의 시, 그리고 반가사유상의 미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삶의 본질을 음미해 볼 수 있다면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진 찍을 땐 못 보았던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추락한 비행기 날개 위에서 소정은 보았을까?
자아를 찾아가는 종교-철학적 진실이 묻어나 있는 이 영화는 벤쿠버 영화제, 토론토 영화제 등의 여러 영화제에서 초청 받아 호평을 받았다. 02-3672-0181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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