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없애려 말고 바람을 잠재우라”
“파도 없애려 말고 바람을 잠재우라”
  • 이재형
  • 승인 2004.03.22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봉은사 육조단경 혜국 스님 논강1
번뇌를 끊으려 하기보다 화두로 바꾸어야 참 수행

‘매일 5000배-손가락 연비’등 수행과정 소개도


<사진설명>남국선원장 혜국 스님은 선(禪)이란 완전무결한 나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 봉은사가 2월 21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8회에 걸쳐 실시하는 육조단경 논강. 첫 논주 남국선원장 혜국 스님이 ‘『육조단경』의 사상’이라는 주제로 그 문을 열었다. 이날 논강에는 장대비에도 불구하고 스님과 불자들 300여 명이 참여했으며, 3시간 내내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혜국 스님은 이날 『육조단경』의 사상과 자신의 수행체험을 중심으로 ‘선(禪)’을 이야기했다. 편집자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은 우리 선가의 종지입니다. 선맥은 부처님의 염화미소를 이어 인도에서 이어지다가 28대 보리 달마에 의해 마침내 중국에서 선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육조단경』은 6조 혜능대사의 생애와 말씀을 담은 것으로 선종의 제일 경전이 되어왔고 많은 선문(禪門)의 종지가 쏟아져 나온 원천입니다.

달마 스님이 중국으로 올 때만 해도 그 당시는 각 종파에 따라 불법을 제각각 해석하고 그에 따라 엄청난 파벌의식이 만연돼 있었습니다. 이 때 선종이 주창한 것이 부처님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돈오견성(頓悟見性) 즉 마음 하나를 깨닫는 것으로 말입니다. 부처님은 법화니 화엄이니 천태니 하는 것을 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마음하나 즉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달마대사에서 시작된 선은 혜능 스님 대에 이르러 남방은 돈교(頓敎), 신수 스님이 계시던 북방은 점교(漸敎)가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북방선의 돈(頓)이 무엇이냐? 이것은 말로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 어쨌든 돈은 마하반야바라밀이고 요즘말로 하면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청정무구한 자리입니다. 마치 달이 하나지만 그것이 잔을 비추는 개수에 따라 달이 천개도 되고 만개도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말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말에 떨어지면 안됩니다. 혜능 스님이 말하는 정심(淨心)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럽고 깨끗한 정심이 아니라 번뇌가 끊긴 그 마음자리, 내가 내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정심이고 무념입니다. 그리고 이 무념으로 들어가는 것이 화두참구법입니다. 그런데 이 무념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잠깐 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저는 전강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板齒生毛)’라는 화두를 받았습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판때기 이빨에 털 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60년대 말 그것을 붙잡고 선방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온갖 망상과 졸음만 찾아 들고 나중에는 ‘판치’라는 것이 ‘판때기’가 맞는 것인지 ‘앞 이빨’이 맞는지 엉뚱한 생각만 하다가 전강 스님으로부터 크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화두 잡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날마다 5000배씩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절을 하면 할수록 내 앞에 서 있는 부처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있는 60조의 세포 하나하나에 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마침내 손가락을 하나하나를 태우며 내 안의 모든 업장이 녹기를 발원했습니다. 이후 다시 발심해서 태백산 도솔암에서 3년 동안 눕지 않는 장좌불와와 생식을 하며 용맹정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도 잠을 이기기가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남들은 여기서 죽을 각오로 열심히 정진했다고 하지만 실제 수행에 전념한 기간은 기껏 두세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시간을 온갖 망상과 졸음과 싸웠습니다. 천장에 줄을 묶어 목을 넣은 채 졸음을 이기려고도 해보고, 머리에 물그릇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잘 안되더라고요. 지금 반성해보면 그 때는 망상과 싸우려고 했지요. 그런데 내 몸 안에 망상이 가득차 있었으니 어떻게 상대가 되겠어요. 마음이 어느 곳을 향하느냐에 따라 돈(頓)으로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파도와 바다가 하나이듯이 중생과 부처가 하나입니다. 파도를 없애려면 바람을 잠재우면 되듯 망상을 없애려는 것은 무모합니다. 오히려 망상 하나하나를 화두로 바꿔 나가야 수행이 제대로 됩니다. 그럴 때 망상이 부처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화두입니다.

『육조단경』은 새로 만드는 법이 아닙니다. 본래 있는 완전무결한 나를 보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좌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리=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