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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세속적 지식에 대한 붓다의 태도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인간을 몰락과 파멸로 이끌 수도

세속적 지식은 해탈과 평화의 증진을 얻기 위해 순수한 종교적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결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세속적 지식은 세속적 목적을 성취하는데 유용하다. 이런 지식들은 삶의 표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지구의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식량생산의 증대방안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공장을 돌리고 거리와 가정을 밝게 비칠 에너지의 개발 방안과, 공장과 기업체의 경영기법, 질병의 치료, 주택이나 교량의 건설, 특이한 음식의 요리방법 등등에 대한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 것은 무엇인가를 따지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밖에도 세속적 지식은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만들거나 주식시장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합법을 가장한 사기행각과 정치적 고통과 증오를 부채질하는 등 좋지 않은 목적에도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특히 20세기에 걸쳐 세속적인 지식이 급속히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정신적인 문제들이나 스스로를 그르치게 하는 불만족 문제의 해답에는 좀처럼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있음직한 일들 가운데에서, 세속적 지식으로는 결코 인류가 가진 우주적인 문제와 평화, 행복을 이루어야 하는 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세속적 지식이란 본래 발견이나 발명에 의거한 것이라는 전제를 갖는데서 찾을 수 있다.

이와 반면 불교에서는 세속에서 최선의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신문화와 지혜의 계발을 통해 정신적 자유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보통사람들에게 세속적 지식의 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종적인 분석에 따르면 세속적 지식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리(법, 다르마)에 관하여 무지(無知)함을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윤회의 덫에서 헤어날 수 없다. 붓다는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이여. 너희는 아주 오랫동안 부모와 형제와 자식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경험했다. 오랫동안 불행했으며, 질병으로 고통을 겪었다.

너희들은 이 인생 속에서 원치 않는 것들을 만나왔고, 나고 죽는 긴 여정 속에서 진정한 슬픔, 바다보다도 많을 눈물을 흘려왔다.”

붓다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고 죽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붓다는 이런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보여주는데 혼신의 관심을 기울였다.

붓다는 그의 제자들에게도 형이상학적이거나 호기심 차원의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붓다는 이런 문제들이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세속적 지식으로는 결코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세속적 지식이나 과학적 연구는 반드시 종교적 또는 정신적 가치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세속적 지식들은 사람들을 순수한 종교적 삶으로 인도하는데 공헌하기 어렵다. 핵무기에서 보듯 종교적 가치가 없다면 세속적 지식이나 기술의 진전은 인간을 몰락과 파멸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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