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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기자명 이미령
꽃이 법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법답지 못한 것임을

성문은 가르침의 소리(聲)를 듣고서야(聞) 수행이 진전되는 단계입니다. 사리불이나 목련존자처럼 부처님 당시 뛰어난 제자들이 모두 성문이라 불리는데 그것은 바로 스승이신 부처님에게서 법을 듣고서 진리에 눈을 떠갔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 자신에 대한 통제가 엄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된다, 저것은 안 된다, 그러면 큰일난다…라는 식으로 세상에 대해 여러 가지 잣대를 이리저리 맞추느라 그것을 넘어선 경지는 엄두도 내지 못하였던 것이지요. 그 잣대는 진리에도 적용되어 깨끗한 경지(열반), 더러운 경지(사바세계)에 대한 차별심에 얽매이는 폐단을 떨어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자들입니다. 대승경전에서 부처님의 성문제자들을 그런 차별심에 얽매이지 말게 하려는 노력은 도처에 보입니다.

그중 좬유마경좭에서 읽었던 사리불 존자와 하늘여인(天女) 간의 옥신각신 실랑이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유마 거사의 방에 모인 이들의 대화를 듣다가 한없는 법의 기쁨을 느낀 하늘여인이 감동을 이기지 못하여 하늘의 꽃을 흩뿌렸습니다. 곱디고운 빛깔의 향기로운 꽃들이 비처럼 쏟아졌습니다. 은은한 향기가 유마 거사의 방에 퍼져가는 가운데 꽃들은 위대한 보살들과 엄격한 성문제자들을 가리지 않고 위에서 소복하게 내려쌓였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보살들의 몸에 닿는 순간 꽃은 이내 떨어졌지만 성문 제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몸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세속과 인연을 끊은 수행자들 아닙니까? 사랑하는 어머니의 눈물도 냉정하게 뿌리치고 대문을 열고 나온 이들 아닙니까? 그런데 새삼 꽃이라니요? 그것도 눈을 의심할 정도로 아름다운 하늘 여인이 뿌린 꽃이라니요?

사리불 존자는 당황하여 제 옷에 달라붙은 꽃을 털어냈습니다. 하지만 꽃은 처음부터 그곳에서 피어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전을 읽으면서 꽃을 털어내려고 애를 쓰는 사리불 존자가 머릿속에 그려져 혼자서 웃은 적도 참 많습니다.

그러자 얄밉게도 하늘여인이 이렇게 묻지요.
“왜 꽃을 떼어내려고 하시나요?”
사리불 존자는 답합니다.
“이 꽃은 법답지 못하기 때문에 떼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하늘여인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꽃은 법답지 못하다, 언제부터 이 방안에 있었느냐, 그렇게 도가 높은데 어째서 여인으로 살아가느냐는 사리불의 고정되고 편협한 사고방식들이 하나하나 깨어져가는 모습이 좬유마경좭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인 사리불이 ‘한갓’ 하늘여인에게 비참하게 깨져가는 모습이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성문 제자를 향해 통쾌할 정도로 거침없이 반격을 펼치고는 있지만 이 반격은 성문을 부정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간 이 사바세계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이들이 뼈를 깎는 고통 속에 최고의 경지인 열반을 얻었지만 그에 안주하지 말고 생사와 열반의 경지를 함께 보며 그 상대적인 가치마저도 넘어서게 하려는 부처님의 직접적이고 따끔한 지적인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대승불교권 사람들은 성문이란 존재를 아주 저열한 단계로 몰아붙여 왔습니다. 하지만 성문의 단계에서 닦아야 하는 법문들은 모두가 부처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곰곰이 되새기기 보다는 걸림 없이 살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 대승입네 하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바로 이런 겁 없는 이들에게 황금보다 소중한 부처님 말씀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기 위해 엄격한 성문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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