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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조실 관응 스님 원적

기자명 김형규
  • 교계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28일 오후 7시…법납 76세, 세납 95세

조계종 8교구 본사 직지사의 조실 관응당 지안 대종사가 2월 28일 오후 7시께 직지사 산내 암자인 중암에서 법납 76세, 세납 95세로 원적했다.

스님은 191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929년 상주 남장사에서 탄옹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36년 서울 선학원에서 구족계를 수지한 뒤 일본 용곡대(龍谷大)에서 수학했으며, 직지사 주지, 김용사 강사, 동국학원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56년부터 47년 동안 직지사 조실로 주석하며 후학들을 양성했으며 유식학(唯識學)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로 추앙 받았다.

영결식은 3월 3일 오전 11시 직지사 만덕전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봉행된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 관응(觀應) 스님 주요 양력

[1910년] 경북 상주군 외서면에서 출생.
[1929년] 상주 남장사에서 혜봉스님을 계사로 탄옹스님을 은사로 득도.
[1934년] 유점사 전문강원 대교과 졸업.
[1936년] 서울 선학원에서 보살계 및 비구계 수지.
[1938년] 중앙불교전문학교 졸업. 문경 김용사 강사 취임.
해인사 해외유학생으로 선발.
[1942년] 일본 경도 용곡대(龍谷大) 졸업.
[1943년] 오대산 월정사서 안거.
[1952년] 해인사 백련암, 고성 옥천사 등지서 안거 수행.
[1956년] 황악산 직지사 조실 추대.
[1959년] 조계사 주지 및 중앙포교사 취임.
[1961년] 동국학원 이사
[1963년] 용주사 주지.
[1965년] 대구 능인학원 이사.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 6년 결사.
[1981년] 직지사 주지.
[1985년]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1989년] 학교법인 보문학원 이사장. 청소년교화연합회 총재.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명예원로. 황악산 직지사 조실.



## 1993년 4월 본지가 게재했던 관응 스님과의 인터뷰


"깨닫고 보면 이 세상의 생명체는 하나"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래서 누구도 인터뷰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관응 스님을 찾아뵙기 위해 부득이 편법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다.

사전에 관응 스님의 친견을 도와준 중암의 도진 스님, 그리고 직지사의 법등 스님, 연수원장 이양길 법사와 우리(신문사)일행이 관응 스님으로부터 법문을 청해 듣는 형식으로 일단 자리를 마련한 후 적당히 기회를 봐서 몇 가지 질문을 하자는 쪽으로 작전(?)을 짰다. 물론 이런 방법이나마 조실 스님께서 허락하시면 다행이라는 직지사쪽의 이야기가 있어 서울에서 황악산 중턱의 중암까지 이르는 동안 내내 조바심에 시달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가까스로 관응 스님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데 성공을 했다. 스님께서 우리네 중생들의 얄팍한 속내를 모를 리 없겠지만 짐짓 모른 채 말문을 트시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스님은 법문을 듣고 내려가라는 양 지체없이 말씀을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좋은 비유가 있습니다. 옛날 달마 조사를 찾아간 신광 대사가 여쭙기를 '내 마음이 심히 편치 못하니 스님이 나를 더불어 편안히 해주길 바랍니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달마 스님은 손을 쑥 내밀어 '네 마음이 그렇게 편안치 못하다니 편하지 않은 그 마음을 갖고 오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마음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신광 대사는 '마음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얻지를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달마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너와 더불어 마음을 편안히 마쳤다'했다 합니다. 마음이란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 몸뚱이 안에 든 것도, 밖에 있는 것도,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닌 것이지요. 마음이란 모양은 없지만 시방세계에 가득 찼고 또 과거 현재 미래에 끝이 없이 연이어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유식(唯識)의 종가(宗家)를 이루고 있는 스님이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마음 이야기로 화두가 시작됐다. 일반인들에겐 어렵게만 다가오는 유식에 대해 스님은 '유식을 한마디로 또는 단정해서 도식적으로 이해하려는 데서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 법' 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람들은 보통 몸뚱이에 한 개씩의 생명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렇지 않다고 했어요.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했거든요. 부처님은 깨달았다고 하고 범부는 깨닫지 못했다고 하는 것처럼 깨치고 못 깨치고의 문제인데, 이것은 바로 식(識)의 문제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시길 깨닫고 나니 이 세상의 생명체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 알면 부처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다른 말로, 마음은 깨치면 지혜가 되고 못 깨치면 식(識)이 되는 것입니다. 요새 비유로 설명해 볼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에서 자체로 빛을 갖고 있는 것은 태양뿐입니다. 다른 행성들은 자체의 빛은 없이 태양의 빛을 받아 광명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생명체도 바로 이런 원리를 갖고 있어요. 생명체는 하나입니다. 이것이 각각인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입니다"

스님의 법문은 유식을 학문적으로 연구해서 가르치는 학자의 설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든든한 신뢰감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철저한 수행이 뒷받침된 데서 오는 위신력 때문일 것이리라. 신라의 원측 스님을 당시 중국의 현장이나 규기 스님 같은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위대한 유식의 대가라고 소개한 스님은. 특히 원측은 현장이나 규기가 유식학의 연구에 있어 법상종(法相宗)의 입장을 반영하지는 못했던 것에 비해 법상종의 입장까지도 포괄해서 유식을 연구함으로써 독창적인 면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유식이란 것은 아무래도 교학적 측면으로 분류된다는 점에 착안, '과연 참선이나 염불이 아닌 교학을 통해서도 구경(九竟)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내 놓자 스님은 마치 질문을 예견이나 했었던 것처럼 즉설(卽說)로 답변을 했다.

"사는 기운, 다시 말해서 생명체를 불교에서는 법(法)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하나인 생명체를 깨달아 아시고 49년 간 중생들에게 이 도리를 알리신 것이지요. 그런데 제각각 제 몸뚱아리에 생명체가 있는 줄 아는 중생들을 제도하려다 보니 처음에는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다 제각각 존재하는 것으로 법을 파악하는 가르침을 펼쳤다 이 말이지요. 그러다가 12년 이후에는 '객관은 본래 없는 것이다. 모두가 식이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중에는 객관과 주관을 떠난 경지를 설명하셨어요. 원래 우주법계의 원리, 즉 진리인 것을 이법(理法)이라 하고 이것을 49년 간 차례로 가르친 것을 교법(敎法)이라 하는데, 이 이법과 교법은 결국 다른 게 아닌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학을 해서는 구경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스님은 차츰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시면서 부처님 이야기에 몰입하신다. 이런 기회가 두 번 오기란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내친 김에 몇 말씀 더 여쭙겠다는 심산으로 조심스럽게 몇 가지 질문을 드렸다.

"역대 조사 중 특히 스님께서 관심이 가는 선사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중국의 마조 선사와 임제 선사를 들고 싶어요. 마조는 백정의 아들이었고 보잘것없는 청소부의 아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요. 그가 깨달은 후 고향에 돌아가니 고향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환영을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그런데 단 한 명의 노파가 그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대단한 양반의 방문 때문에 떠들썩한 줄 알았는데 다름 아닌 쓰레기 청소부 마씨의 아들녀석이로군' 그 후 마조는 고향에 가지 않았는데 감회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고 합니다. '권하건대 그대여, 고향에 가지 마소/ 고향에서 누구도 성자일 수 없나니/ 개울가의 옛 할머니/ 아직도 옛 이름 부르네'
깨우침에 어디 귀천이 있겠습니까? 자아발견이 중요한 것이지요. 임제 선사도 훌륭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이미 이십 전후에 학계(學戒)가 훌륭했지요"

"스님께서는 천축사 무문관에서 6년 결사를 성만하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때 이야기를 좀 들려 주십시오"

"당시 여러 사람이 함께 결제(結制)를 했었는데 결국 중간에 다 나가고 나 혼자만 끝을 본 셈이 되었지요. 지효, 경산(京山) 스님들도 같이 했었는데 들락날락했고, 그렇습니다"

"선을 중시하는 것은 우리나라 불교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선방제도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문제점이 있지요. 중국 선방의 예를 들겠습니다. 중국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않고 성불에 이르게 한다는 선 수행을 할 때 조실 스님이 앉아서 바릿대를 들고 조참(早參)을 하면서 설법을 하고 저녁에는 만참(晩參)을 합니다. 또 아침, 저녁이 아닐 때는 소참(小參)이라고 하여 필요에 따라 수시로 법문을 해 줍니다. 모양이 없는 마음을 찾는데 이 정도의 채찍이 없다면 결국 견성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선방은 어떻습니까. 모든 선방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10년 공부를 한 수좌나 갓 들어온 신참이나, 공부를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대접을 하고 또 받고 그러질 않습니까. 이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지요. 새를 기를 때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길러서는 안 되듯이 잘못된 것입니다. 종단의 여러 문제들도 결국은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요"

평소 교육에 관심이 많은 스님답게 교육의 방향에 대한 지론은 일목요연하다. 스님은 승가교육 뿐만이 아니라 사회교육도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개탄한다. 요즘 교육이 마치 옛날 중국의 포류(蒲柳)와 같아서 마치 자식을 무슨 부모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게 하는 기계처럼 다루는 것 같다고 질타한 스님은 부모를 닮게 하는 교육, 보상심리로 이뤄지는 교육, 주입식 교육은 교육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나무나 식물의 특성을 무시하고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잘라서 제멋대로 키워놓은 관상목을 기르는 듯한 교육이 계속된다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하다는 것이었다.

마음 조리며 준비했던 관응 스님과의 인터뷰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으로 조바심은 사라졌지만, 허둥지둥 기념촬영을 마치고 중암에서 직지사까지 내려오는 동안 어떻게 내려왔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긴장이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긴장을 풀어준 직지사 아래 막 지은 찻집에서 마셨던 대추차의 안온했던 향기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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