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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겸한 준걸 황악산에 흩날리다

기자명 김형규
  • 교계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3일 관응당 지안 대종사 다비식 엄수

직지사 만덕전서 1만 사부대중 애도


선지식의 적멸(寂滅)을 슬퍼하듯 하얀 진눈깨비가 내리던 3월 3일 황악산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한국불교의 선지식 관응당 지안 대종사의 영결식이 오전 11시 직지사 만덕전 앞에서 엄숙히 봉행됐다.

<사진설명>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엄수된 다비식. 법구에 불이 들어가자 울음 섞인 불자들의 염송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다섯 번의 명종과 함께 시작된 영결식에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도원 스님, 원로회의 부의장 종산 스님, 원로의원 원명 스님, 지종 스님, 성수 스님, 동춘 스님, 지혜 스님, 초우 스님, 정천 스님, 활안 스님, 진제 스님, 혜정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중앙종회 의장 지하 스님, 종회의원과 각 교구본사 주지 스님 등 1만 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해, 스님의 원적(圓寂)을 기렸다. 또 청와대 불자회 조윤제 회장, 문화관광부 한진수 종무실장, 한나라당 이민배 의원, 대구지검 이찬우 김천지원장 등 정·관계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종정 법전 스님은 추도 법어를 통해 “살아서는 천상(天上)의 즐거움을 부러워하지 않고 죽어서도 지옥(地獄)을 두려워하지 않는 노승(老僧)이 오늘 아침 육도(六道)의 관문을 열고 환귀본처(還歸本處)했다”며 “무소 끊는 기틀을 어떻게 측량하리요. 천개의 눈을 단박에 뜨더라도 엿볼 수 없다”며 스님을 추도했다.

원로회의 의장 도원 스님은 영결사에서 “큰스님의 일기일경(一機一境)은 하늘을 흔들고 땅을 움직였으며, 일언일구(一言一句)는 불조(佛祖)를 뛰어넘었다”며 “눈 먼 자는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하였고, 귀 먹은 자는 귀가 열려 듣고 싶은 것을 듣게 하였으며, 꽃망울을 머금은 꽃들은 우주의 신비를 열게 한 뛰어난 포교사였다”고 말했다.

또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한국불교 역대 준걸 가운데 스님처럼 선교(禪敎)를 겸전(兼全)하고 수행과 전법을 한 몸으로 감당한 분도 드물다”고 회상하고 “왜 진작 큰스님을 번듯한 회상으로 모셔서 더 많은 감로법문(甘露法門)을 청하지 못했던가 아쉬움이 남는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오후 12시 30분. 영결법어, 행장 소개, 추모입정, 법어, 조사, 헌화의 순으로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영결식이 끝나자 스님의 법구는 다비장인 연화대로 향했다. 길은 100여 개의 만장이 앞서 열었고, 그 뒤를 1만여 명의 스님과 불자들이 스님과의 인연을 짊어진 채 오열하며 따랐다. 30분 뒤 연화대에 도착한 법구는 “스님 불 들어갑니다. 빨리 나오세요” 울음석인 외침과 함께 한 줌 불꽃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연화대를 둘러싼 불자들은 불꽃이 사그러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으며, 선지식을 잃은 슬픔은 어둠처럼 황악산에 내렸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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