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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눈을 떠도 엿볼 수 없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조계종 법전 종정 법어

살아서 천상의 즐거움을 부러워하지 않고 죽어서도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노승이 오늘 아침 육도(六道)의 관문을 열고 환귀본처(還歸本處)하니 이것이 활중득사(活中得死)입니까. 사중득활(死中得活)입니까?

활중득사(活中得死)라고 한다면 반야영검(般若靈劍)을 면하기 어렵고 사중득활(死中得活)이라고 하면 불조(佛祖)도 신명(身命)을 잃을 것입니다.

어느 곳을 가야 투탈생사(透脫生死)하고 불조(佛祖)의 신명(身命) 잃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구(求)함이 있다면 석가는 낙절(落節)하고 가엽(迦葉)의 패궐(敗闕)은 깊어질 것입니다.
벗어나는 관문(關門)이 없다면 목마는 칼날 위로 달릴 것이고 석녀는 불 속에 몸을 감추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산중에 노승이 몸을 감추고머리도 꼬리도 없는 주장자를 한번 치니 허공의 뼈는 부러지고 오취중생(五趣衆生)이 금대(金臺)에 오릅니다. 이것이 오고 감이 없는 활계(活計)입니까?

시방법계 생명들이 목숨을 잃는 기략(機略)입니까?
회마(會 ) 알겠는가?

무소 끊는 기틀을 어떻게 측량하리요. (재철지기안가측 裁鐵之機安可測)
천 개의 눈을 단박 뜨더라도 엿볼 수 없도다. (돈개천안막능규頓開千眼莫能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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