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8대참회문 기도수행 배수열(무상·25) - 상

기자명 법보

경제적 어려움 속에 기피한 불교
절 생활 체험 뒤 불교 공부 뜻 세워
인간관계 발전 이룬 대학 생활
군에서도 부처님 모시는 복 누려

무상·25
무상·25

서울 서초동 반지하에 음악을 좋아하는 고등학생이 살고 있었다. 쌀을 살 돈이 없어 옆집 사는 친구에게 빌리러 다녔던 2015년 겨울, 온갖 괴로움이 나를 스멀스멀 감쌀 때 처음으로 절에 찾아갔다.

힘든 집안 사정에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에 다니던 보살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의 목적은 ‘살려주세요’였다. 보살님의 소개로 엄마를 따라 하남 검단산 중턱에 올라 주지스님을 만나 뵙게 되었는데, 피골이 상접한 나를 보시곤 “지리산에 잠시 다녀 오거라” 하셨다.

질풍노도의 시기, 힙합·랩 음악에 빠져있던 나는 불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성적도 썩 좋지 않았지만 학교는 빠지기 싫었는지 아니면 절에 그렇게도 가기 싫었는지, 출결에 문제가 생긴다는 핑계를 연거푸 대며 절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때는 불교를 몰랐다. 물론 지금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절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아기부처님이 계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구례로 향하는 버스에 나 홀로 몸을 실었다. 갖가지 생각이 얽혀 불안과 초조함에 빨려 들어가던 찰나, 지리산에 계신 스님이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눈을 지긋이 감고, 관세음보살님을 염하며 잠시 쉬어보려무나.” 

마음을 내려놓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 너무나도 편안하고 아늑했다. 눈을 떠 보니 구례 터미널이었다. 

구불구불한 산길, 스님이 운전하는 트럭에 몸을 싣고 도착한 곳엔 작은 암자가 있었다. 그곳에는 지금은 스님이 된 동갑 남학생 한 명과, 합기도를 잘하는 여학생이 먼저 와 있었다. ‘이 친구들은 여기 왜 왔을까, 휴대폰도 안 터지는 이곳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궁금했다. 그러나 사연을 묻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은 근심걱정 없는 미소와 환희로 가득했다.

깊은 산속 만물을 깨우는 아름다운 도량석, 새벽예불과 더불어 사시불공, 저녁예불에 도반들과 빠짐없이 참석했다. 저녁예불이 끝나면 잠에 들기 전까지 주지스님의 가르침 하에 오직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좌선에 들었다. 위빠사나 혹은 사마타 수행이 아닌 오직 ‘관세음보살'. 예불이 없는 시간에도 오직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도끼로 장작을 팼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공양 준비와 마무리를 도왔다. 한겨울이라 수도가 얼어 물이 나오지 않아 며칠 동안 씻을 수 없었지만 찝찝함은커녕 몸에 짙게 밴 장작냄새가 고소하게 느껴졌다. 관세음보살님이 몰래 와서 안아주셨는지 어두웠던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하산하기 며칠 전, 굵직한 비가 내리던 오후였다. 처마 밑에 또래 셋이 나란히 앉아 비를 보는 시간을 가졌다. 느껴본 적 없었던 고요함이었다. 기존에 살았던 삶과 완전히 대비되는 체험을 하게 된 그때, 처음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에 의문을 가졌다. 기도는 왜 하는지, 나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는지, ‘관세음보살’ 염불은 무엇일지, 내 입가에 번진 미소는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다.   

조금이나마 적응했다 싶었을 때, 하산의 시간이 찾아왔다. 좀 더 남아 있겠다고 하는 도반들과 작별인사를 한 뒤 “또 만나자”는 스님께 감사의 합장 반배를 올리고 버스에 올랐다. 내 마음이 어떻게 밝아졌는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이것을 더 알고 싶다’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고, ‘언젠간 불교를 공부해야지!’라는 발심을 했다.

그 발심은 나를 동국대 불교학부로 이끌었다. 학교에선 많은 분들이 사막화 된 내 마음에 샘물을 만들어 주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걸 배웠다. 참으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난 그 시절은 나에게 너무 소중한 기억이다. 아름다운 세월은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던지, 영장이 날아왔다. ‘불교공부도, 인연들과의 아름다운 추억도 더 쌓고 싶은데 입대라니!’ 잔뜩 겁을 먹었지만 군 생활을 부처님을 모시며 할 수 있는 군종특기병으로 갈 수 있게 돼 너무 기뻤다. 전시상황 발생 시, 법당을 지키고 법사님을 지키는 보직. 불자로서 군에서도 부처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게 큰 복으로 느껴졌다. 

[1639호 / 2022년 7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