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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엘리트 불교에 심취했다”

기자명 권오영
  • 교학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동국대 유호선 강사, 세미나서 주장

“불교 선정-지혜, 유교 충서와 유사”


“조선 후기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불교를 이단시하고 배척했지만 당대 지식층이라고 할 수 있는 유학자들은 불교에 심취했다”

3월 13일 서울교대 전자계산소 공학1실에서 열린 불교학연구회(회장 해주 스님) 22차 학술발표회에서 동국대 강사 유호선〈사진〉 박사는 “학계에서는 조선 후기의 불교를 침체기라고 단정하고 연구에 미진한 점이 있다”며 “유학자들의 문집이나 기타 서적에 나타난 자료를 검토하면 당대 유학자들이 불교에 심취해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신유한의 불교관에 대한 일고찰-『분충서난록』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한 유 박사는 과거에서 장원을 했지만 서얼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차별을 받아야만 했던 당대 엘리트 유학자 신유한의 불교관을 통해 17세기 이후 조선 후기의 유학자들의 불교관에 대해 언급했다.


신유한 불교관 중점 소개


유 박사는 논문에서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고 국난극복을 위해 노력했던 사명(四溟) 스님에 대해 대부분의 위정자들은 스님의 충의를 인정하면서 불교적 관점이 아닌 유교의 권내로 영입해 칭찬하려는 태도를 고수했다”며 “하지만 신유한은 기존 위정자들과 달리 불교교리를 사명당의 유교적 행적에 대비시키려 했다”고 밝혔다.

유 박사는 “신유한은 자신이 정리한 사명당의 일기인 『분충서난록』에 주를 달고 직접 고증하려 한 것을 보면 ‘임금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것은 선정(禪定)이요, 나라를 위해 계책을 낸 것은 지혜(智慧)이며, 일본에 건너가 동포를 구출한 것은 자비(慈悲)가 된다’고 언급했다”며 “이는 반야의 법은 유교의 윤리강령인 오륜(忠孝)과 다르지 않다는 논리를 폈다”고 강조했다.

유 박사는 또 신유한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 “그는 숙종 39년 33세에 증광시 갑과를 장원으로 합격했지만 서얼이라는 신분으로 고위직에 오를 수 없어 통신사의 제술관으로 일본을 오가며 불교에 대한 관심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며 “특히 그는 스님들과의 서간(書簡)을 통해 ‘유자와 승려의 자치는 다르지만 도는 하나이며 선가(禪家)의 선정과 지혜는 절로 동정(動靜)과 근엽(根葉)이 있어 유가의 충서(忠恕)에 응한다’며 불교에 대한 높은 식견을 갖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조선불교 연구 지속돼야”

이 같은 유호선 박사의 논문은 조선후기 불교에 대한 연구로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조선후기 유학자들이 스님들과 주고받았던 서간, 시 등이 담겨진 문집에 대한 연구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 박사는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문집을 살펴보면 대외적으로는 불교를 이단이라고 배척하려는 경향은 나타나지만 내면적으로는 불교사상에 심취했음을 알 수 있는 많은 기록들이 많다”며 “이런 기록들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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