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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첨예한 ‘의사 조력 존엄사’ 불교계 입장은

  • 사회
  • 입력 2022.09.30 20:21
  • 수정 2022.10.04 10:12
  • 호수 1651
  • 댓글 3

안규백 의원 대표발의…“개인 권리”vs“생명경시” 팽팽
불교 연구자 등 “사회 의식 변화에 따라 현실적 접근 필요”
약자 죽음 내몰리지 않도록 촘촘한 사회 제도 마련이 우선

안규백 의원은 8월24일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조력존엄사와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안규백 의원 페이스북]
안규백 의원은 8월24일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조력존엄사와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안규백 의원 페이스북]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6월 ‘의사 조력 존엄사법’을 대표발의하면서 찬반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가운데 불교 연구자 및 불자의료인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존중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전향적인 접근 자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약자들이 강요된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촘촘한 사회적 제도가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안 의원이 발의한 ‘의사 조력 존엄사법’은 말기 환자가 담당 의사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말기 환자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 의사 조력 존엄사법을 통해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증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환자의 죽음 선택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찬성론과 법안 남용으로 생명경시 풍조 확산될 것이라는 반대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는 안 의원이 올해 8월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개최한 ‘조력존엄사 토론회’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국민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해 이미 사회적 합의 기반을 조성했다”는 찬성 의견과 “사회적 돌봄 체계 및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 우선시 되지 않으면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될 것”이라는 반대 의견으로 나뉘었다. 토론회에선 종교인으로서 가톨릭 신부가 토론자로 참여해 “자살 방조에 불과한 존엄사를 선한 행위로 포장하는 것”이라며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이런 가운데 법보신문은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김성철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유상호 한양의대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임정애 호스피스완화의료인정의에 ‘불교적 관점으로 의사 조력 존엄사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먼저 조성택·허남결 교수는 사회적인 의식 변화에 따라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조성택 교수는 “기계장치에 의한 생명 연명은 무의미하다. 게다가 기독교계에서는 생명에 대해 ‘신이 주신 것이므로 인간이 관여해선 안 된다’라는 강경한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하며 “물론 존엄사가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할 문제이지만 그 자체로써 비불교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조 교수에 따르면 불교에서 생명은 의식과 감정이 동반되는 활동이 가능한 상태로, 말기 암 환자가 죽음 앞에서 약물에 의존해 고통을 견디는 방법보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욱 존엄하다. 특히 깨달은 부처님조차 육신의 소멸과정에서 의식이 ‘깨어 있음’은 열반을 획득한 자의 또 다른 징표라 할 수 있다. 그는 “깨달음의 지혜는 목숨의 무한한 연장을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닌 죽음을 바르게 인식하는데서 극복하는 것이다”라며 “죽음은 모든 생명의 보편적 법칙이며 삶의 필연적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조력자살을 위한 스위스 동행기가 담긴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2022, 신아연, 책과나무)’를 통해 모든 삶에는 죽음이 포함된다는 것을, 안락사에 초점을 두기 전 죽음 자체가 일상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어야 함을 재차 강조했다.

향후 생명윤리에 대한 불교계의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연구기관이 마련돼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조 교수는 “세속적 삶 속에서 생명윤리적 문제는 반복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라며 “급진적 결과보다는 바람직한 과정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연구하고 논의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남결 교수는 “윤리학계에서는 30~40년 전부터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의사, 보호자 등의 잘못된 선택으로 살인을 동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돼 여전히 논란 중이다”라며 “그럼에도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교육·경제 수준이 높아져 가는 가까운 미래에는 자신을 삶과 죽음까지 스스로 결정하는 흐름이 확산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따라서 허 교수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 종교적 의무를 지키는 것 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더 크게 볼 가능성이 많다”며 “때문에 존엄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고 변화에 흐름에 따라 사회적 통제도 완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 교수는 “불교는 불살생과 자비라는 측면에서 ‘존엄사’에 대해 찬성과 반대, 2가지 모두에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다”며 “그러나 무조건 원칙만 고집한다면 대중이 외면하는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 불교의 근본정신과 더불어 개인의 여건이나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종교와 사회가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불명확한 존엄사법안의 기준을 짚으며 ‘존엄사’에 대한 융통성 있는 결과가 도출되기 위해선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과 제도 도입·시행 요건 등을 엄격히 규율하는 사회적 장치 마련이 우선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김성철 교수는 “윤리적 관점에서 선과 악이 확실해지려면 사회 상황에 따른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안락사의 상황도 있겠지만 언제부터 죽음으로 볼 것인지, 얼마만큼의 고통을 참을 수 없다고 할 것인지에 대한 진단 기준이 모호하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 “‘의사조력자살’ ‘존엄사’는 ‘안락사’의 다른 이름이다. 달라이라마는 ‘안락사’를 ‘살인’으로 보고 (안락사에 관여하는 의사들이) 악업을 짓고 있다고 지적했다.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다”라며 “그럼에도 가톨릭에서는 생명윤리에 대한 자신들의 ‘도그마’를 앞세워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독단이며, 큰 부작용이 뒤따른다. 모든 종교계·의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상호 교수는 “불교에서 생명은 신의 개입 없이 오로지 자연주의적인 상태로 바라봐야 한다”며 “자비라는 가치에 입각해 보면 중생의 괴로움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기에 조력존엄사에 대한 취지는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자비라는 가치가 전 사회적 규범으로 수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계에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특히 “현재 우리 사회분위기는 자신이 원치 않는다거나 의학적 조치로 회생 가능성이 없을 경우 의사의 의료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지만 조력자살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자신의 의지만 반영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의사나 의료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조력자살이 의사나 의료계의 동의가 없인 이뤄질 수 없는 구조임으로 환자와 더불어 의사를 중요한 주체로 인식하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유 교수는 이같은 불교적 가치를 의료현실에 맞게 구현해 내기 위한 불교계 내부의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불교계 생명윤리 전문가를 발굴해 지속적으로 의견내도록 하면서 불교가 사회문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임정애 호스피스완화의료인정의도 먼저 섣부른 ‘존엄사법’이 가져올 부작용에다.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오랜 투병은 환자와 보호자를 지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들은 심리적·환경적 요인에 의해 죽음이 최선이라 생각할 수 있다”며 “사회적 약자들의 경우 경제적 부담과 정보의 소외로 더욱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 앞에 닥친 환자들의 우울과 불안, 외로움, 경제적 부담, 통증 등을 극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며 “존엄한 죽음을 위해선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고 존엄한 생애말기 돌봄이 가능하도록 관심과 지원을 늘리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모든 환경이 잘 갖춰진 다음에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는 일부의 의견이 있다면, 향후 재차 존엄사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내영 기자 ny27@beopbo.com

[1651호 / 2022년 10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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