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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日 쿠카이 스님이 후유츠쿠에게

기자명 이재형

가난 벗해 수행 전념할 것 결의

당나라서 밀교 전래

황실 후원으로 전법 진력

“수행-공덕 청렴에서 나온다”


겨울이 깊었습니다. 건강하시온지요.

저도 이제 나이 오십에 가깝고 머리도 희끗희끗 해져옵니다. 그토록 염원했던 전법(傳法)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나이어린 제자들이 제몫 하는 것을 지켜봤으면 싶지만 저의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 같아 언제 꺼질지 모를 상황입니다. 또 제 성품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하지 못함에도 오랫동안 나라의 녹을 받아왔습니다. 다만 황송할 따름입니다. 이제 저에게 내리던 녹을 끊어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출가구도자에게 분수에 맞지 않는 재물은 괴로움의 근원인 까닭입니다.

물푸레와 넝쿨을 옷 삼아 산중에 홀로 앉아 부처님을 염하며 번뇌의 먼지를 털어내는데 전념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그 수행 공덕으로 국가의 은혜와 그동안 돌봐주심에 보답하려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경전과 만다라 등도 모두 제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몸, 삶은 하룻밤의 꿈처럼 덧없는 것입니다. 다시 만나기 어려울지라도 부디 진언밀교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애써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한없는 고마움과 그리움에 이렇게 삼가 글을 올립니다.




쿠카이(空海, 774~835) 스님은 헤이안(平安)시대 진언종 출신으로 천태종 개조 사이초 스님과 더불어 일본불교가 정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다. 821년 11월 국가 대신(大臣)인 후지와라노 후유츠쿠(藤原冬嗣)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구법과 전법, 그리고 수행과 후학양성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탁월한 수행과 교화력, 거기에 청렴한 출가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았던 모습은 후학들의 영원한 사표가 되고 있다.

쿠카이 스님은 시코쿠현 출생으로 교토에서 불교를 공부한 후 유불선 3교 중 불교가 가장 최상승의 법임을 밝히는 저술을 펴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31세 때인 804년 5월 12일 스님은 마침내 국가유학생으로 선발돼 당나라로 구법의 길에 올라 5개월의 험난한 여행 끝에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도착했다. 그는 청룡사(靑龍寺)에서 마음의 스승 혜과(慧果) 스님을 만난다. 불공삼장의 법을 이은 혜과 스님은 이국의 젊은 승려에게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가르쳤다. 쿠카이 스님도 스승의 기대에 부흥해 마치 쩍쩍 갈라진 논이 물을 빨아들이듯 밀교의 정수를 흡수해 갔다. 그렇게 배우기를 약 1년. 스승 혜과 스님은 쿠카이 스님에게 불사리를 전수하며 “세세생생 우리 서로 스승과 제자 되어 밀교를 널리 전하자. 그대는 어서 귀국해 배운 가르침을 널리 전하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했다. 쿠카이 스님은 감사와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그의 입적을 지켜보고 직접 비문을 짓기도 했다.

스님은 다른 고승들을 찾아 공부를 하는 한편 동분서주하며 경전을 수집했다. 백제에서 받아들여 시작된 불교가 일본 전 지역으로 확산됐지만 부족한 경전으로는 그 깊은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던 탓이다. 이렇게 모은 게 경전 412부247권, 범어진언집 42부44권, 논소 32부47권 등이다.

이들 경전을 갖고 돌아온 스님은 일본 황실과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스님은 스승 의 당부대로 전법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스님은 편지의 내용처럼 돌연 수행에 전념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말도 중요하지만 경전에 나와 있는 높은 경지에 직접 이르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전법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스님은 수행과 공덕은 청렴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또 지나치게 세상사에 얽매이게 되다보면 자칫 수행자의 근본을 망각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200여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하는 이 편지는 『홍법대사진적집성(弘法大師眞蹟集成)』에 수록돼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자료를 제공해주신 일본 교토불교대의 원익선 교무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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