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뭣고’10년 해도 안되면 내 목을 잘라가라

  • 사설
  • 입력 2004.03.29 11:00
  • 댓글 0

대원스님│학림사 오등선원 조실


주장자 세 번 내려치다. 시회대중은 아시겠습니까?

여기에 있어서는 일러도 삼십봉이요, 이르지 못해도 30봉이라. 이 산승도 30봉을 면치 못하리라.(대중 침묵)

여기에 있어서 눈썹을 꺼덕거려도, 눈을 깜짝거려도, 주먹을 들어도, 일어나 절을 해도,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서 대해도, 돌아서 앉아도, 일체 말도 않고 상관 안한다 해도 옳지 못합니다.

여기서 주장자를 들어 보이고, 때리고, 빗방을 쏟아지듯 할을 한다 해도 그것은 당나귀가 미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한 글귀가 있겠습니까? 대중께서 이 산승을 살릴 수 있는 한 글귀를 이를 수 있다면 한 번 일러보십시오. 어떠한 계책이 있을까요? 말이 없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께서 부득이 가만히 계시니 이 산승이 말씀드리겠습니다.


梅萼香傳春谷暖이라
松風聲度夜堂寒이니라
매화꽃 활짝 피어 그 향기 전하니 봄계곡이 따뜻함이라
솔바람 불어 소리 지나가니 밤집은 차가움이로다.

오늘 이렇게 말씀드린 것도 번거롭게 많이 말씀드린 것입니다. 제가 이 자리오르기 전에 이미 간파한 분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을 것이니 그 분들을 위해 사족을 답니다.

남전 (南泉)선사께서 어느 날 법문을 하는데 한 학인이 묻습니다. “스님, 열반 100년 후 어디로 가십니까?” 남전 스님 말씀하시기를 “나는 한 마리 검둥소가 되리라” “저도 스님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네가 나를 따라와서 말이되면 자갈을 물고 풀을 먹을 것이고, 나처럼 소가 된다면 네 또한 코를 꿰고 한 묶음의 풀을 먹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것입니까?

역대 그 많은 수행자나 선지식이 임종게를 지었지만 특이하게 남전 스님만 ‘검둥소가 되어 간다’ 했습니다. 이와 연관된 게송입니다.


옥마(玉馬)가 밝은 달과 샘물을 모두 삼켰다
진흙소가 유리에 땅을 갈고 털가죽을 쓰고 머리에는 뿔이 있다.
다른 가운데 오는 것이로다.
천상인간에 몇사람이나 이런 이가 있을꼬.

자기 인생 가는 길을 이처럼 멋지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누구나 극락가기 좋아하고 도솔천에 나기 원하는데 축생의 소몸을 받아 가겠다고 과감하게 내뱉을 수 있냐 하는 말입니다. 소몸 받아 가겠다는 사람은 무간지옥도 괜찮다는 겁니다.

네가 나를 따라오면 자갈을 물고 풀을 한 묶음 먹는 신세가 될 것이라는 이 말은 또 뭐냐는 겁니다. 또 남전 스님이 한 도리는 어떤 것입니까?

이런 게송을 들었을 때 ‘척’하고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에 안목이 없으면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도 못하고 생각도 붙일 수 없습니다. 남전 스님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같은 몸인데 어찌 그리 과감한 그런 말을 남전 스님을 할 수 있었을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異類中行得自由
拽穿鼻孔卒難收

草枝銜得相逢處
高臥深雲任白頭

이유중행(異類中行) 이란 말은 금강경에 나오지만 가끔 주련에 써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중’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사람 몸이 어느 한 곳에 고착돼 영원히 그대로 있는게 아니라 천변만화(千變万化) 하는 것을 ‘이유중’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득자유(得自由), 자유를 얻었다 하는 것입니다. 소몸을 받았다고 해서 코 꿰어 주인 따라 끌려 다니면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소몸 받았어도 간섭 받지 않고 자유를 얻었다 하는 말입니다.

코를 궤려면 요만한 코투레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코를 꿰어 잡아 당기면 그 소가 주인시키는 대로 꼼짝 못하고 끌려 당기는 거지요? 그런데 남전 스님이 소가되어 간다는 여기에 코를 꿰어 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뛰어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 소 주인 되어보겠다고 코를 꿰어 보려 달려들었지만 한 사람도 소를 거둔이가 없더라 하는 뜻입니다.

초지함득상봉처(草枝銜得相逢處) 즉, 한 묶음 풀을 만나면 풀을 먹고, 물을 만나면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만나서, 고와심운임백두(高臥深雲任白頭) 깊고 높게 띄운 구름 위에 누워서 흰머리를 맡겼다. 이 말입니다.

이제 좀 이해라도 갑니까?

덕산 스님은 누구든지 들어가면 몽둥이로 그냥 막 때려요. “어떤 게 불법입니까?” 물으려 손드는 자세만 취해도 때립니다. ‘방’ 때리는 데는 천하제일이었습니다. 임제 스님은 누구든지 오면 ‘할’을 합니다. 어떻게 공부하냐고 물으면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할’ 합니다. 이것이 선사의 즉설인 것입니다.

중생교화하는데 이처럼 1분 아니, 30초면 됩니다. ‘할’하는데 30초면 충분하지요? 그런데 1시간이 넘도록 법문했는대도 모자라서 또 들여다 보고 있어요. 더 좋은 얘기 없나 하고요. (대중 웃음)

시대에 따라서 근기도 차이가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사선은 최상승선입니다. 우리 민족은 워낙 민족성이 뛰어나 자잘한 것은 취하지 않아요. 위파사나도 좋은 수행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사선은 계합(契合)만 하면 바로 되는 것입니다. 단박에 깨닫습니다. 스승을 믿고 철저하게 해 보세요. 그렇다고 직장, 가정 다 팽겨치고 절로 들어오라는 것 절대 아닙니다. 수행한다고 가정 파탄시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두는 산에서도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법문할 때 마다 말합니다. ‘이 뭣고’ 10년 해도 안되면 내 목 잘라가라. 자신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버리면 되는 겁니다. 깨달음은 불조도 전해줄 수 없다 했습니다. 제가 차맛을 얘기하라 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친 맛을 어떻게 설명해서 여러분에게 쏙쏙 넣어 나와 똑같이 해줄 수 있느냐 이겁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에서 나란 존재를 잃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정리=채한기 기자

사진=김형섭 기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