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경수 『세속의 길 열반의 길 』

기자명 윤창화
  • 교계
  • 입력 2004.03.29 11:00
  • 댓글 0

지성인이 쓴 불교 수상집

냉철한 시각 철학적 사색 불교-인도철학 넘나들어

구도-제도 ‘갈림길’ 아닌‘종교 사명’으로 규정


수필과 수상(隨想)이라는 테마를 통하여 현대인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알리고 불교를 비평하고 불교를 사랑했던 책이 서경수 선생(1925-1986)의 『세속의 길 열반의 길 』이다.

‘불교수상집’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종을 울리기도 했던 이 책은 당시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불교인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철학적 사색과 지성적 시각으로 심도 있게 불교와 인도철학을 이야기했다. 그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추구하는 훌륭한 가르침에 대해서는 순애보 같은 사랑을 보냈지만, 현실은 도외시한 채 구태에 젖어 있는 승단에 대해서는 절망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에게 있어서 한국의 승단은 진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증(愛憎)의 대상이었다.

“종교는 역시 이면불(二面佛)이다. 한편으로는 절대(진리)를 추구하여 무한히 올라가야 하고(상구보리),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 세계(사바세계)로 내려와서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종교가 절대를 추구하는 한 길만 걸어간다면 그러한 한 종교는 중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중생제도의 사명을 잃은 종교는 벌써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속’과 ‘열반’이라는 엇박자 같은 두 길을 종교자(스님)는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일단(一段)이다.

그는 어느 날 법정스님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보다 위대해지고 보다 성스럽고 보다 점잔해지기를 오늘부터 포기해 버렸노라” 이 얼마나 엄청난 말인가? 위대함과 성스러움 속에 들어 있는 권위와 가식, 그리고 허상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면불(二面佛)’이다. 한편으로는 천사와 같은 신성함을 추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동물적 향락을 즐기려고 애쓴다”는 그의 말처럼 또 이 책은 어제와 오늘의 현실을 불교적인 프리즘을 통해서 조망했던 책이기도 하다.

수필이나 수상(隨想)을 통하여 불교를 비평 비판하고 또 불교를 알리고자 했던 단편적인 글은 많았으나 발표한 글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당시 지성적인 불자들에겐 아주 새롭고 신선한 책이었다. 아마 삶에 대하여, 현실에 대하여 고뇌했던 불교인 치고 이 책을 탐독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특히 이 책 앞부분의 ‘세속의 길 열반의 길’은 매우 사색적이고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글로써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대해 슬기로운 눈을 뜨게 한다.

종교철학에서 인도철학으로, 인도철학에서 불교를 발견했던 그는 이기영 박사와 함께 대학생불교연합회의를 이끌었던 정신적 지도자였다. 젊은 인재를 길러야만 미래의 한국불교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1956년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한 뒤 기독교 위주의 서양철학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58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입학, 동양의 종교인 불교와 인도철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63년 처음으로 동대에 인도철학과가 신설되자 이기영 박사와 함께 교수로 임용되었다. 항상 예리하고 날카로웠으며 검은 안경테에 길게 기른 수염은 그의 상징이었다. 출세와 아부를 일삼는 세속적인 처세에 대해서는 거의 이별을 고했을 정도로 초연한 편이었다.

독신으로 살다가 환갑이 되던 해(1985) 외우 이기영 박사의 소개로 제자벌 되는 김미영 선생과 결혼했으나 1년만인 1986년 10월 14일 교통사고로 갑자기 작고했다. 딸이 태어난 지 21일 만이었다. 국판, 양장, 383쪽, 1966년 원음각.


윤창화/민족사 대표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