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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옥섭과 문수암

기자명 법보신문
벼랑에 머무는 암자

그 정갈한 침묵이 그리워


자잘한 일정 문득 떨치고

얼어붙을것 같은 고요 만나


<사진설명>문수암

서울 길로 치자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김천에서 3번 국도로 빠져 진주로, 예서 다시 33번 국도로 나와 고성으로 달리는 풍광이 삼삼한 길, 사천을 지나 얼마 후에 팻말이 있고 지시한 대로 골짜기로 틈입해 가파른 길 끝까지 가면, 벼랑에 머무는 문수암(文殊庵)이 있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한다. 남해 금산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이곳 민가에서 묶게 되었는데 꿈속에 한 노승이 일러준 대로 행하다 문수보살을 보고 벼랑 위 암자를 낸 것이다.

대개 산사는 수려한 자연풍광에 화룡정점으로 박혀 못 잊을 한 폭을 완성한다. 하여 상춘객부터 단풍놀이까지 산사를 배경으로 흥이 과한 이들의 놀이판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문수암 일대와 아래의 계곡은 고성사람들에겐 놀이처였다. 1920년대에 고성읍내에 괴질이 돌아 이곳 문수암으로 피병을 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산사 아래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원로들로부터 춤을 이어 받았는데 오늘날의 고성오광대놀이다.

내가 처음 문수암을 찾은 것은 바로 그 춤의 흔적 때문이었다. 물길이 줄고 잡목이 우거져 옛 놀이처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발견한 게 일출의 장관이었다. 운무를 박차고 섬에서 떠오른 태양이 무이산을 넘는 동안, 바다를 마중 나가 만나는 땅 고성반도의 채도를 바꾸고 서둘러 한 발 담그고 바다로 내려가는 섬들의 그림자를 늘였다 줄였다 한다. 그럴지라도 태양과 문수암 사이의 간격은 한치 오차 없으니 필시 태양을 문수암의 암벽에 단단히 동여놓았으리라. 그렇게 문수암의 일출은 다도해 점점이 박힌 섬 그림자를 관장하고 있었다.

후로 줄곳 그곳의 일출을 탐하였다. 특히 방송 PD를 하던 때는 일출을 촬영하느라 진을 쳤고 여태도 여전하여 농사꾼 춤꾼인 고성오광대놀이 이윤석 회장을 만나면 “코에 바람 넣으러 가자”며 일점 오톤 트럭을 몰고 문수암의 새벽에 다가간다. 그러니까 꽤 오른 셈이다. 그러나 한번도 말을 건넨 적이 없다. 암자는 오랫동안의 관습으로 기도자와 일출에 술렁이는 관광객을 가려 대우하는 법을 익히고 있는 듯했고 나 또한 골백번도 더 들었을 뻔한 질문을 보태고 싶지 않았다. 정작은 구름 머무는 곳에 고인 침묵을 건들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언제부턴지 내심 힐끗 들여다보이는 암자의 안쪽에서 오체투지로 엎드린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복이어야 더 깊숙이 숙일 것 같은 저 자세, 게서 산아래 기슭에서 발견하지 못한 춤의 흔적을 보았다. 우리 춤은 비워야 제법인데, 그 법을 저 숙임이 가르쳐주니, 묻지 않아도 건네 받는 답이었다.

번화한 도심에서 다이어리를 열면 깨알처럼 쏟아지는 자잘한 일정을 치르다보면 문득 떨치고 찾아가서 얼어붙을 것 같은 고요를 맛보고픈 곳 문수암이다.

(전통예술연출,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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