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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스님 고찰 더 필요하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3.02.27 13:07
  • 수정 2023.02.28 10:52
  • 호수 1670
  • 댓글 1

독립운동 진응 스님 증명 법사 참여
불화에서 1917년 작 태극기 ‘감동’
‘선항일 후친일’ 변절 프레임 오류 많아
교계 연구 절실…종단‧문중 지원 필요

남원 선원사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시왕도에서 항일 독립운동 때 사용했던 형태의 태극기 그림이 발견됐다. 색채와 선명하게 드러난 4괘를 관찰한 전문가들은 1917년 작으로 보고 있다. 1919년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관사 태극기’의 4괘 배치와 같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보물로 지정된 ‘진관사 태극기’는 항일운동에 나선 후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초월 스님이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해 품어온 것이다.

지장시왕도 제작 증명으로 진응혜찬 스님(震應 慧燦, 1873~1941)이 명시된 화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응 스님은 당대 최고의 강백이었으며 30본산을 지정할 때 화엄사가 누락 되자 10여 년에 걸친 항의‧요구 끝에 본사로 승격시킨 장본인이다.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의 연합조약을 체결하자 진응 스님은 석전, 만해, 만암 스님 등과 함께 임제종을 세워 한국불교 정통성 계승에 앞장섰고, 3·1운동 당시 한영, 진호, 성월 스님 등과 전국사찰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태극기 연구 전문가 송명호 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전문위원의 평가는 의미 깊다. “일제는 1912년 칙령 19호를 반포해 태극기를 없애고 대신 일장기를 걸도록 했다. 이런 점에서 지장시왕도 태극기는 독립을 바라는 불교계의 서원이 담긴 ‘항일지장시왕도’라고 해도 손색 없다.”

‘대한독립‧항일운동’을 이끌거나 참여한 스님들은 불교사에 상당수 등장한다. 만해 스님을 비롯해 한영, 만공, 성월 스님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친일파 청산(2005∼2010)’ 과정에서 독립유공자였던 스님이 ‘친일 승려’로 지명되며 곤욕을 치른 스님도 있다. 구하, 응송, 효당 스님이 대표적이다.

일제 국권 침탈에 저항한 의병은 전국에서 일어났다 당시 애국지사인 황준성의 의병군이 두륜산 대흥사 심적암에서 집결한 바 있다. 당시 대흥사에 머물고 있던 응송 스님(應松‧1893∼1990)은 이 의병군에 들어가 활동했다. 항일 불교 청년들의 비밀 결사체인 만당(卍黨)을 조직하는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장본이기도 하다. 3‧1운동 직전 만해 스님의 밀명을 받아 불교의 용성 스님, 천도교의 최린, 기독교의 이승훈에게 기밀문서를 전달하는 등의 연락책을 맡은 정황도 보인다.

물론 대흥사 주지(1937∼1945)를 맡으며 일제에 협조한 사실은 있다. 중일전쟁의 전몰장병 추도식 참석, 해군 비행기 헌납금 납부 등이다. 진상규명위의 의견을 수렴한 정부는 결국 독립유공자였던 응송 스님을 2010년 서훈 취소 결정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는데 ‘친일 승려 54명’을 등재했다. 등재 검토 과정에서 구하 스님(九河‧1872∼1965)과 효당 스님(曉堂‧1904~1979)이 포함됐었다. 구하 스님은 당시 중앙불교 교단의 총무원장, 중앙학림 학장, 조계종 고문을 역임할 만큼 근현대기 통도사를 대표하는 고승으로 평가 받는 스님이다. 독립자금을 지원한 구하 스님은 상해에서 제작‧배포된 승려 독립선언서 서명자이기 하다. 

효당 스님은 만당 당원이었다. 문도와 후손들이 항일 자료를 제출하며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여 최종 등재 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국권을 침탈당하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친일파 청산은 앞으로도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저술가의 관점과 자료 선택에 따라 항일에서 친일로도 바뀔 수 있다. 응송 스님의 행적을 연구한 김광식 박사는 논문 ‘박영희의 독립운동과 민족불교’에서 이렇게 피력한 바 있다. “진보적 역사가들이 위의 승려(응송, 구하, 효당 스님 등)들을 바라보는 공통점은 ‘선항일, 후친일’이 있다. 이런 평가의 저변에는 배신, 변절이라는 감정적 관점이 개재되었다. 한 인간의 일생, 가치, 이념 등은 삶 전체의 행적을 갖고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선항일, 후친일’ 프레임으로 친일파로 낙인찍힌 스님들의 연구는 더 깊어져야 한다. 아울러 석전, 만공, 진응, 성월 스님 등 독립운동 공적은 있으나 포상을 받지 못한 스님들에 고찰도 필요하다. 이것은 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종단, 종립대학, 문중, 사찰 모두가 나서야 할 일이다.

[1670호 / 2023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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