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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 시대 던져진 가장 시급한 윤리적 문제는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23.03.09 17:12
  • 호수 1672
  • 댓글 2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인 일반 시스템이론은
오온이 비어 있다는 불교 무아와 맞닿아 있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는 공장식 축산
생명 외경심이 영적 관계에 들어서는 가늠자
부처님이 제1계율로 불살생 설한 이유이기도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가 3월9일 ‘심층생태학과 불교의 불살생’ 제하의 기고를 보내와 이를 게재한다. 고 대표는 지구온난화 비상협의회 대표와 식생활교육 부산 네트워크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국제 채식연합회(IVU)를 대표해 세계 NGO대회와 유엔회의 활동에도 참여했다. 편집자

모든 것을 과정과 패턴의 흐름으로 보는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인 일반 시스템이론은 오온이 비어있다는 불교의 무아와 맞닿아 있다. 시스템이론에 따르면 모든 생물체와 우리는 머무는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강의 소용돌이다. 스스로 영속하는 패턴이기에 소위 자율적 주체로서의 공간을 차지하는 자아도 임의적이다. 그 경계가 피부 안에만 갇혀있지 않고 무한히 확장된다.

예컨대 인간과 모든 생물체의 내부는 우주와 생태계의 연장이자 상호의존관계의 탁월한 표본이다. 인체 내에 모든 원자 분자 세포들은 우주 생태계와 계속으로 주고받으며 매초, 매일, 몇 주, 몇 년이면 대부분 바뀌고 재생된다. 주기적으로 새롭게 바뀌는 몸과 이전의 몸이 다르다면 우리의 자아도 독립된 실체라는 생각은 착각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인체 세포수는 43%에 불과하고 우리 몸 내부의 고생물 박테리아 바이러스 원생생물의 세포수는 57%다. 한 사람의 생리학적 구성을 설명하는 유전자가 2만개라면 그 몸에 사는 미생물 전체의 유전자는 200~2000만개에 이른다. 또한 우주 지구의 리듬이 우리 몸 안에 뛰고 있다. 인체 내부의 생체시계가 태양의 계절과 달의 음력 주기, 지구의 자전 및 조수의 흐름과 동기화되어 있다. 한마디로 우리 몸과 모든 생명체의 몸 그 자체가 생태계요, 생태계와 우주는 인간과 모든 생명체의 확장된 몸이다.

‘반야심경’에 따르면 공의 바다 즉 순수 의식의 바다는 불생불멸 부증불감 불구부정하다. 공즉시색 현상계 또한 이 공의 바다에 다름이 아니다. 육근과 오온의 현상계는 성스러운 무한한 상호연기의 인드라망이자 공의 바다의 물결과 같다. 물결이 물에 다름 아니듯이 존재 자체는 생성에 의해 표출된다. 그것은 태어남과 죽음, 밤과 낮, 켜짐과 꺼짐 그리고 계절의 순환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영원한 창조의 춤이고 리듬이다. 이 찰나찰나 생성인 영원한 우주적 춤이야말로 존재 자체의 본질인 것이다. 베단타 철학은 이 존재와 생성의 순환을 릴라 즉 신의 유희라 한다. 소위 깨달음이란 물결은 이미 물이기에 죽거나 얻을 필요가 없음을 직관하듯 공의 바다와 순수 의식이 끊임없이 바뀌면서 저를 나타내는 온갖 다른 모양들에 자신을 일치시키지 않고 순수 의식 자체의 바뀌지 않는 본질에 일치시키는 데 있다.

심층생태학의 개척자 아르네 네스(1912~2009)는 어느날 구식현미경으로 다른 화학물질 두 방울이 만나는 모습을 보는데 탁자 위를 다니던 나그네쥐에 붙어살던 벼룩이 그 한가운데 뛰어드는 것을 목격한다. 벼룩은 무섭도록 격렬하게 발버둥치며 죽어갔다. 그는 직관적으로 벼룩의 사투 속에서 제 자신과 닮은 무엇을 본 것이다. 나와 타자, 지구를 하나로 인식하는 심층생태학은 우리에게 환경윤리가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이타적으로 자기 이익을 포기하고 심지어 희생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장기적으로 생태에 역효과를 낳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대신 보다 넓은 관점 즉 더 깊어지고 넓어진 자기에 대한 사랑을 통하면 자연스레 환경보호가 곧 자신임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오늘날 육식은 기후위기와 팬데믹, 생물다양성과 자원고갈 등 모든 환경문제와 비만과 만성질환을 초래하는 주원인이자 동시에 빠르게 이 모든 것을 치유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특히 공장식 축산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이며 이 시대에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시급한 윤리적 문제이다. 단지 시스템이론과 불교 및 심층생태학에 비추어 봐도 굳이 불살생을 제1계율에 두지 않아도 자연히 불살생이 우주의 섭리와 자신에 조화로움을 알 수 있다. 만물에 대한 외경심은 세계와 영적 관계에 들어서는 가늠자다. 모든 존재는 폭력 앞에 몸을 떤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사랑한다. 우리가 다른 존재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본다면 어떻게 해를 가할 수 있을까. 부처님이 불살생을 설하는 이유다.

[1672호 / 2023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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