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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일본 히로시마대 소류 가츠라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 인식논리학 세계적 대가

소류 가츠라 교수는



소류 가츠라교수는 1944년 일본 지가겐(滋賀縣)에서 태어났다. 교토대(京都大) 문학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수료한 후, 1977년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하리바르만의 『따뜨바싯디』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다시 교토대(京都大)로 돌아와 문학박사를 재취득했다. 현재 일본 히로시마대학의 정교수로 있으며, 2004년 4월부터 경도의 류고꾸대학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또 ‘Journal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등 다수의 국제 저명학술지의 편집자 및 동아시아 책임자를 맡고 있다. 저서와 논문은 『인도인의 논리학』, ‘How did the Buddhists prove somehting? -The Nature of Buddhist logic’등 40여 편이 있다.


현대 학문 바탕서 디그나가 핵심사상 재구성

96년 세계 첫 『불교인명사전』공동 연구 추진


어느 학문 분야든 그 분야의 전공자들 사이에 실력차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적 석학이라 불리는 A급 학자로부터 B급, C급 그리고 가장 아래 단계라 할 수 있는 불가촉급으로 구분됨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국제 학회에 가면 쉽게 알 수 있는데, A급 학자가 논문을 발표하면 세부적으로 그와 동일한 전공을 가지고 있든 없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그의 발표를 경청하지만, 불가촉급 학자가 발표하면 이미 발표장에 있던 사람들도 주섬주섬 가방을 싸서 나가기 일쑤이다.

그러면 불교학 분야에서의 A급 학자와 다른 부류의 학자들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즉, 어떤 사람들을 우리는 불교학에 있어 세계적 석학이라 부를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갖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미국, 일본 등에서 수학하면서 필자가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불교학의 세계적 석학이란 적어도 세 가지 자질, 구체적으로 ①불교학에 대한 치열한 열정, ②자기 전공분야에 있어 정확하고 심오한 이해, ③세계 학회에 자기의 이론을 이슈화시킬 수 있는 표현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74년 『따르바싯디』로 박사학위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펴신 이래 수많은 천재들이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학의 꽃을 피웠음을 우리는 불교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의 불교학은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이미 세계적 학문의 분야가 되었다.

따라서 앞서 말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학자를 소개하라고 한다면, 이미 법보신문에서 기획 연재하는 “세계 각국의 불교석학들”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한 수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누군가 필자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 오직 한사람만을 꼽으라 한다면 필자는 주저없이 일본 히로시마대학의 소류 가츠라 교수를 꼽고 쉽다.

가츠라 교수는 일본이 내세우는 불교학, 특히 불교 인식논리학 분야의 세계적 대가이다. 선생의 불교학과의 인연은 이미 그가 1944년 도쿄도 지가겐(滋賀縣)에서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의 집안은 대를 이어 온 정토진종 소속이다. 유년기 때부터 보고, 익힌 가문의 전통은 자연스럽게 가츠라 교수를 교토대(京都大) 문학부에서 불교를 공부하게 하였고, 그때 그가 사사받은 스승이 지금도 학계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유이치 가지야마 선생과 핫또리 마사아끼 선생이다.

필자가 일본에서 공부하던 당시들은 바에 따르면, 가츠라 선생은 현재 교토대에서 티베트불교를 가르치고 있는 가츠미 미마끼 선생과 함께 교토대 문학부가 배출한 최고의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의 학문적 성숙은 70년대에 그가 캐나다 토론토대학에 유학하여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듯싶다. 당시 토론토대에는 당대 서구의 대표적 불교석학이었던 A. K. 와더 선생과 우리시대의 진정한 인도철학자 B. 마띨랄 선생이 강의하고 있었다.
가츠라 선생은 이때 세계로 눈을 돌려, 불교학과 인도철학의 전반적인 흐름과 세부사항 뿐만 아니라 불교학에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소화해 내며, 세계 학계에서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가를 배웠다. 선생은 1974년에 아비다르마논사인 하리바르만의 『따뜨바싯디』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디그나가 연구’세계적 권위

가츠라 교수는 불교학계 및 인도학계 전반에 걸쳐 기여해 오고 있다. 특히 선생은 불교 인식논리학 분야에 크게 공헌해 오고 있다. 그는 불교 인식논리학파의 창시자인 디그나가 (ca. 480~540) 연구에 있어 세계 최고의 대가이다.

선생은 디그나가 사상에 대한 일련의 논문, 즉 “The apoha Theory of Dig naga,” “Dignaga on trairupya,” 그리고 “Dignaga and Dharmakirti on adhar sanamatra and anupalabdhi” 등을 통해 디그나가의 핵심사상을 현대학문의 틀 속에서 재구성했다. 더구나 가츠라 선생의 연구가 있기 이전에는 많은 학자들이 디그나가의 사상을 당시의 학계에 보다 더 많이 알려진 불교 인식논리학파의 또 다른 논사인 다르마끼르띠 (ca. 600~660)의 사상과 동일시하였다. 선생의 연구는 이것이 잘못된 이해였다는 것을 학문적 검증을 통하여 보여 주었으며 더불어 학계에 디그나가의 사상을 보다 올바르게 해석하는데 토대가 되었다.

불교의 핵심 개념과 주요 사상과 관련해서 가츠라 교수의 업적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불교의 의미론, 개념론인 아포하(apoha)론의 연구에 있다. 아포하론은 인도 종교철학에서 해석하기 가장 어려운 개념의 하나이다.

인도에서는 수백년에 걸쳐 최고의 논사들, 즉 불교 쪽에서는 앞서 말한 디그나가, 다르마끼르띠를 비롯하여, 샨따라끄쉬따 (ca. 725~788), 즈냐나스리미뜨라 (ca. 970~1030), 및 라뜨나끼르띠 (ca. 1000~1050) 등이 그리고 힌두교 쪽에서는 웃도따까라 (ca. 550~610), 꾸말릴라 (ca. 590~650)와 바짜스빠띠미스라 (대략 10세기 말) 등이 이 개념을 탐구하고 논쟁했다.

현대 학회에서도 가츠라 교수의 업적이 나오기 전까지는 세계 불교학계에 아포하론은 일종의 신비로 남아 있었고, 많은 학자들이 이해에 어려움과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디그나가의 아포하론 연구에서 출발한 그의 연구는 “Jnanasrimitra on apoha”란 논문에서 정점을 이루어, 이 이론의 전개과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학계에 제시했다.

가츠라 교수의 또 하나의 학문적 역량을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세계 불교학계에서 각 분야의 석학들을 모아서 프로제트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선생이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의 언스트 스타인켈너교수와 함께 세계 다르마끼르띠학회 (World Dharmakirti Conference)를 창립한 주요 인물이라는 사실은 학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 불교학 협회 (Inter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Buddhist Studies) 등 각종 학회에서 일본 불교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그리고 불교 인식논리학 분야의 최고봉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더하여 선생은 1996년부터 인도원전에 기반을 두고 세계 최초의 『불교인명용어사전』(佛敎因明用語辭典)을 국제공동 연구를 통하여 준비하여 현재 가시적 성과를 보여 주고 있다.

‘다르마끼르띠학회’창립추도

위에서 열거한 가츠라 교수의 업적은 그의 외형적 학문역량의 일부를 소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계석학이라 불릴 수 있는 그의 진정한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흔히들 학문을 하는 것을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한다.

등산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기껏 뒷동산 정도를 오르고 말지만 다른 사람은 세계 최고의 봉우리 위에 선다. 그러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필자는 앞서 학자들간의 능력차를 말하면서 그것을 만드는 원인으로 제일 먼저 열정을 들었다. 그렇다. 최고봉과 최고봉이 아닌 사람과의 차이는 온 몸을 불사를 듯한 치열한 열정의 유무에 있다. 필자가 옆에서 지켜본 가츠라 교수는 불교 인식논리학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늘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경지에 있다.

학문에 몰두한 선생의 모습은 어머니를 생각하는 어린이의 모습과 같고, 물을 생각하는 목마른 사람의 모습과 같다. 필자는 가츠라 교수를 만나는 순간 단 한마디의 강의를 듣기 이전에도 불교학이 그의 몸이 되었고, 피가 되었고, 정신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사성어에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가츠라 교수는 우리에게 선생가외(先生可畏)라는 말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선생이 늘 들려주던 이야기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불교학이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동국대 불교학과 우제선 교수 jwoo@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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