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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미국 스텐포드대 베르나르 포르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전통 선사상 해체-비판 … ‘서양적 선불교’ 정립

방법론적 다원주의 채택…학자간 관점차이 좁혀

한-중-일 연구자료 활용…지역-시대 한계 극복


베르나르 포르 교수는

베르나르 포르(1948~)는 프랑스 태생의 미국 불교학자이다. 정치학과 종교학을 연구했으며, 파리 대학에서 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남아를 비롯해 특히 일본에서 약 10년간 아시아 종교를 연구했으며, 1988년부터 스탠포드 대학 종교학과에 재직하기 시작했고 현재 스탠포드 불교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현재 포르는 스탠포드에 재직하면서 세계 여러 대학에서 강의와 강연을 맡고 있다. 그의 강연 주제들은 대체로 불교 전통과 그 주변 문화적 요소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맞추어져 있다. 이번 2004월 9월 해외 프로그램의 하나로 그는 교토와 나라를 오가며 일본의 성산(聖山) 숭배의식과 불교의 관계를 조명할 계획이다.


베르나르 포르(Bernard Faure)가 현재 가장 뛰어나고 창의적인 선불교 연구자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종종 문헌학자로서의 불교학자들이 보여주는 연구범위의 편협함이나 전방위적 지식의 결핍을 보여주지 않는다. 동시에, 이론적인 담론을 생산해내는 종교연구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문헌학적 소양의 결핍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여유는 그가 종교사학자로서 또는 동아시아 불교연구자로서 갖을 수 있는 당연한 몫이라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불교연구자들은 인도불교나 티베트불교 연구자와 달리 일차적으로 문헌학자여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일면 자유로운 영역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프랑스 연구 풍토에 영향

그가 방법적으로 전통적인 역사기술의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전통적인 선사상의 관념을 해체 또는 비판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를 위해서 세밀하게 수집된 방대한 2차 문헌을 활용한다는 점 등은 그의 독보적인 위치를 말해준다.

사실 이러한 면모를 보여주는 학자는 매우 찾아보기 힘든데, 이러한 그의 학문적 경향은 아무래도 프랑스 학풍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된다. 불교연구에 민족지학의 자료까지 채택했던 드미에빌(P. Demieville)의 경향 뿐만 아니라, 50년대 뒤몽(L. Dumont)의 그룹에 모였던 구조주의적 인도학자들,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영향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만큼 그에게는 연구분야의 경계를 가로지르던 프랑스의 지적 풍토가 배어 나온다. 그가 선택하는 연구자료와 방법론에 의해서 그는 확실히 혼종적인 연구성격을 보여준다.

그의 학문적 이력을 이해하기 위해서 선불교연구의 지형도 속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그려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차대전후 미국 아카데미 내에서 이루어진 주목할만한 선불교 연구분야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북종선 연구를 중심으로한 초기 선종연구이고, 또다른 하나는 일본불교 특히 도겐(道元)에 대한 연구다. 전자의 연구는 돈황문헌과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의 연구에 자극 받은 것이고, 후자는 미국내 일본불교의 영향과 그에 따른 교토학파의 철학적 저작들에 대한 지적인 비판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포르가 이 양쪽 주제 모두에 영향을 받고 또 비판했다는 것은 그의 일련의 저작 속에서 나타난다. 포르의 박사논문 좥정통의 의지: 北宗禪의 계보학과 교리좦는, 1984년 파리대학에 제출되었고 다시 1997년 영어로(The Will to Orthodoxy) 출간했다. 여기서 포르는 야나기다 식의 전통적인 역사비평의 연구경향을 보여준다. 즉, 신수(神秀) 이래의 정치적이고 지적인 맥락을 보여주고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를 통해 만들어지는 북종선맥의 ‘정통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살피게 된다.

그는 이 ‘정통성’이 당대 선불교와 다른 종파들간의 상관성 속에서 만들어진 것 뿐만 아니라 돈/점(頓/漸)이나 지/관(止/觀)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려는 절충적 노력이었음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최근에 전개되는 것과는 약간 다른, 훨씬 젊은 날의 행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르는 이러한 초기 저작에서도 역사비평적 접근과 교리적 해석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파편화된 선의 역사적 단서를 통해 선의 역사를 구축하는 초기의 작업으로부터, 훨씬 다양한 불교적 소재와 방법론으로 선회했던 것은 이러한 작업의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즉각성의~』 로 주목 받아

그러한 맥락에서 그를 종교연구나 선불교연구의 새로운 선구자 반열에 올려놓은 대표작 『즉각성의 수사학 The Rhetoric of Immediacy(1991)』이 탄생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여기서 그는 야나기다 우산 아래 있던 일본식 연구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진정한 ‘서양식’ 선불교 연구를 보여준다.

우선 그는 선불교 연구의 소재에서 매우 새롭다. 그는 기존 선불교 연구에서 주로 취급했던 순수한 역사적 자료들을 선택하는 대신, 승려들의 환술법이나 기적현상, 불교장례법, 불교 미이라 숭배현상, 꿈과 섹스 등의 소재와 같이 전혀 과거에 취급하지 않았던 대상들을 연구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종교적 현상들이 선불교 전통 속에서 함께 존재해 오면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역사적 자료와 병합시킨다.

이와 같이 변방에 놓여있던 소재들, 심지어는 기괴하기도한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히 흥미로운 선불교 내의 문화사적 흥미거리가 아니다. 그에게 이러한 주변적인 소재들은 선불교 전통 속에서 오랫동안 일정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고, 따라서 선불교의 전통이 스스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왔는가에 주목한다.

선불교 전통 내에서 ‘주변’적인 것이나 ‘비전통’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그러한 종교현상을 통해서 ‘순수’하고 ‘본질적인’ 선의 전통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분석한다. 다시 말해 선종 내에 위치한 변방의 자료들은 선종이 스스로 전통적 담론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반선종적(反禪宗的) 자료들이다. 이는 마치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통해 이성과 권력의 목소리를 들려준 스타일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작업 속에서 그는 소위 ‘방법론적 다원주의’를 택하게 되는데, 이는 전통적인 일차 선적(禪籍)의 관점과 그를 해석하는 학자들의 이차적 관점 사이의 간격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낯선 불교 연구의 소재들, 그리고 현란한 현대 비평이론들의 활용을 보여주는 포르의 방법론적 선택은 그의 차후 대부분의 저작에서도 계속 엿볼 수 있다.

포르의 불교 연구 특징은 특정 지역이나 시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대부분의 저서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부분적으로 한국의 자료들이 한꺼번에 활용되고 있으며, 그 자료가 갖는 시대적인 간격도 매우 넓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이론적인 분석이 덧씌워진다. 다소 위험하게 보이는 이러한 서술방식이 서구의 불교학자들에 의해서도 거의 큰 비평없이 수용되는 것은 그의 방대한 지식의 폭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中-日 불교 이해력 탁월

그는 특히 중국불교 뿐 아니라, 일본불교에 매우 뛰어난 식견을 보여주는데 이는 오랜 기간동안 일본에서 연구했던 결과였다. 일본과 같이 불교전통이 잘 살아있으면서도 다양한 문화형태가 혼재한 일본이야말로 살아있는 종교연구의 토양으로 그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일본불교에 대한 관심은 좥Vision of power좦나 좥Chan Insights and Oversights좦, 좥The Red Thread좦 등에 잘 나타난다. 이러한 저작에서도 앞서 말한 낯선 소재와 이론적 탐색이 계속 이루어진다.

좥Rhetoric of Immediacy좦로 시작한 선 전통에 대한 인식론적 비판은 좥Chan Insights and Oversights좦에서 스즈키와 교토학파 등과 같이 현대의 학자들이 구성해 놓은 선의 담론을 비판하면서 일단락 된 듯 보인다. 그 후, 포르의 작업은 주제로 보아 두 영역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은데, 하나는 성(Sexuality)과 불교의 주변문화에 대한 연구이다.

성-주변문화연구로 범위 넓혀

그러나 그의 성에 대한 연구를 보면 주제만 바뀌었지 불교의 전통적 관념을 비판하는 점은 앞의 연구들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 예를 들어, 속제/진제의 2제 차원에서 설명되는 불교식 성의 평등이 어떻게 현실적으로 무력한가를 보여준다. 진제의 차원에서 속제의 성적 차별은 가려지기 때문에, 속제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의례와 도상의 표현에서 여성의 불결함은 의도적으로 노출된다. 이는 탄트라 의식 속에서 보듯, 흔히 힘과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요소로 변질된다.

불교의 성 이데올로기와 실천에 관한 다양한 분석은 좥The Red Thread좦와 근자의 좥Power of Denial좦에 이어 4권으로 기획된 연작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외에도 그의 주제는 불교의 신화와 의례, 승려들의 꿈, 불교성지와 성산(聖山), 불교내의 신중과 잡신들, 거의 모든 문화현상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주변부에 대한 관심은 불교를 교학 자체에 대한 이해보다 그것을 둘러싼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불교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불교연구의 커다란 전환점을 시사한다.

포르가 보여주는 선불교의 문화사적 연구는 교학이나 그것의 역사적 연구에 치중해 있는 한국적 연구현실에 중요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한국의 불교연구는 매우 소중한 현장적 연구재료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도 대체로 매우 고전적이고 권위적인 연구 주제에 치중해있기 때문에, 불교 주변의 살아있는 문화적 현상들을 거의 등한시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 불교학이 신앙의 주체인 대중과 호흡하기는 커녕, 그 맥락을 해석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니 불교를 초기교학으로 환원하거나 기복주의 운운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외국의 연구사를 살펴하는 이유는 단순한 외국 추수주의가 아니라 연구방법의 감각을 빌리자는 데에 뜻이 있다.

강릉대 철학과 심재관 강사 phaidru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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