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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허물어라! 허공을 볼 것이다”

기자명 채한기

혜 국 스님 조계사 禪 법문

부처를 구하면 부처를 잃고, 조사를 구하면 조사를 잃고, 도를 구하면 도를 잃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내 주인공이 어떤 자세인지를 잘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말의 세계에 떨어져 부처도 조사도 도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눈을 갖고 자신의 눈을 찾으면 눈이 보입니까? 마음을 갖고 마음을 찾으면 마음이 보입니까? 찾을 수 없는데 우리는 찾으려고 합니다. 무엇인가 찾으려고 한다는 것은 찾아야 할 대상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찾는 주인이 따로 있고 찾아야 할 마음이 따로 있어 찾는 것이라면 찾을 수 없습니다. 주관과 객관이 나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조사를 찾으려면 조사를 잃고 도를 찾으려면 도를 잃는다고 한 것입니다.




<사진설명>4월 18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조계종 선원장 초청 대법회'에서 충주 석종사 선원장 혜국 스님은 "화두에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야 조사관을 깰 수 있다"고 말했다. 혜국 스님은 무엇보다 스승과 화두를 믿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번뇌망상을 없애려 말고 화두로 바꿔가야 한다"고 설파했다.

마음의 흙으로 부처 조성

그럼 내 안에서도 찾지 말라했으니 이대로가 부처인가? 번뇌망상으로 내 마음자리가 도둑맞고 있는데 참 부처인가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참주인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화두란 무엇입니까? 조주 스님이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합니다. 그럼 ‘정’ 할 때가 화두입니까? 아니면 다섯글자를 다 말한 다음이 화두입니까? 둘다 아니지요. 조주 스님이 보여준 마음이 화두입니다. 조주 스님과 나는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空)도리를 한 번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와 조주 스님의 벽을 깨어야 합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무(無), 정전백수자는 모두 주객이 없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도 모르니 왜 정전백수자라고 했을까? 어째서 무(無)라고 했을까? 하는 겁니다. 바로 의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의심하기 위해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두 공부를 지어가는데 있어서는 내 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치문의 첫구절이 이렇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정으로 꽉 차 있으니 도(道)가 들어갈 수 없다.’ 참나는 놔둔 채 망상으로 이뤄진 감정만 가득해서는 도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이런 것들을 비워가야 합니다. 오늘의 하루는 너무도 소중한 하루입니다. 이 소중한 하루, 내 마음자리 찾기는커녕 텔레비전 앞에서 망상만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번뇌망상이라는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그 번뇌망상을 화두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하는데 못 믿으니 화두들다가도 망상이 피어나면 내 근기가 안되는구나 자기 혼자 주력으로 바꿔버립니다.

<사진설명>혜국 스님을 모시는 청법가가 경내에 울려 퍼지자 불자들이 예를 올리고 있다.


평상시 텔레비전 볼 때는 아무 생각 안 났는데 화두만 들면 망상이 더 일어나는 것 같지요? 연속극 볼 때는 아들 딸도 생각 안 났는데 화두만 들면 언제 내가 애들한테 서운하게 했지, 이웃집 안주인이 나한테 화냈는데 어찌해야 혼내줄까 별의별 생각 다 납니다.

번뇌를 화두로 바꿔야

여러분, 이 잔에도 물이 있지요. 우리 몸뚱이에도 망상이라는 흙탕물이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이 잔을 가만히 놔두면 흙탕물이 가라앉습니다. 텔레비전 볼 때는 망상이 일어나지 않은게 아니라 더 많은 온갖 망상의 찌꺼기가 들어온 겁니다. 그러니 자신의 내면이 보이질 않아요. 화두들면 그제서야 조금씩 보이는 겁니다. 텔레비전 볼 때보다 망상이 더 일어난 게 아니라 내가 짓고 있는 망상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보는 겁니다. 이쯤되면 망상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이것만 알아도 대단한 것입니다. 바로 이 망상들을 하나씩 척척 화두로 바꿔가는 게 공부입니다.

한참 공부 잘 하다가 큰 망상 하나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허송세월 보내는게 아닌가’ 하는 망상입니다. 여러분, ‘황벽의 불법도 몇 푼어치 안 되는구나’ 했던 임제, 황벽의 뺨을 갈긴 그 임제 스님이 하루아침에 확철대오 한 줄 아십니까?
임제선사가 수행을 아무리 해도 깨닫지 못하자 절망에 떨어졌습니다. 젊은 수좌의 이런 모습을 본 목주 스님이 황벽 스님을 만나 보라고 권하자 “스님께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인생을 수행에 바쳤지만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 그 절망감은 안 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대안 스님이 “부처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라”합니다. 임제가 황벽 스님 방으로 들어가 그대로 물었습니다. 바로 30방을 맞습니다. 여러분들은 30방이 그냥 추상적인 줄 아는데 진짜 몽둥이로 내려 칩니다. 구산 스님도 성철 스님도 무지하게 때렸습니다. 저도 많이 맞았습니다. 두 번째 들어가서도 30방 맞습니다. 그래도 스승 믿고 세 번째 들어가지만 또 30방 맞습니다. 여러분은 몽둥이 찜질당하고도 스승믿으며 수행할 수 있습니까? 수행 안된다는 탓 말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임제, 하루아침에 깨친 것 아니다

공부가 수승해 지면 의정이 내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경계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 경계도 무시하고 더 나아가야 조사관을 타파할 수 있습니다. 수행 중 몸에서 빛이 나고 밖에서 광명이 비추고, 부처님 보고 뭐 보고 했다 그러는데 그런 것도 다 자기가 지어서 일어나는 것이니 안주하지 말고 계속 더 정진해 가야 합니다. 임제 스님은 삼현삼요라 했지요. 이 관문, 이 조사관을 깨면 분명히 소식이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 게 절대 아닙니다.
조사관을 타파하는데 그냥은 안 됩니다. 내 한 몸, 내 인생을 이 화두한테 아낌없이 바쳐야 합니다.

정리=채한기 기자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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