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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엽편주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보 광 스님
동국대 불교대학원 원장


일찍부터 구도자들은 목숨을 담보로하여 정진해 왔으며, 그 방법도 다양하였다. 특히 달마대사와 같이 해로(海路)를 통한 전법은 불법의 전파에 큰 역할을 하여왔다. 그래서 실크로드 가운데는 바다의 실크로드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많다.

종단의 지도자이고, 학덕을 두루 갖추었으며, 법주사주지 소임을 맡고 있던 지명(之鳴)스님이 어느 날 도반들에게 믿기 어려운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는 본사주지 소임이 끝나면 태평양을 횡단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선원(禪院)에 들어가서 정진할 수도 있지만, 정말 자신과 한번 겨누어 보고 싶다고 하였다. 목숨을 건 구도행각이 참으로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하였다. 그는 평소에도 바다를 좋아하여 낙도포교의 중요성을 역설하곤 하였다. 특히 서해안 일대의 수많은 섬들에는 90%이상이 기독교이며 불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낙도학생들을 위한 장학회도 만들고 순회법회도 하였다.

회갑이 다되어 가는 나이에 태평양횡단이라니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계획이라서 도반들이 한사코 말렸지만, 그의 의지를 꺽을 수 없어 조촐한 환송을 하였다. 금생에는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분위기가 숙연해지기까지 하였다. 지난 1월 10일에 미국의 샌디에고항을 출항하여 하와이에 잠시 들렸다가 일본의 오이다항을 거처서 부산항까지 오는 데는 약 3~4개월이 걸린다고 하였다. 무려 10,000Km의 바닷길을 20년이 넘은 무동력 낡은 요트에 몸을 싣고 파도와 시름하면서 태평양을 건너오고 있다.

며칠 전에는 피안으로 가는 배인 바라밀다호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바닷길은 평화로운 길이 아니며, 편안한 길도 아니라고.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올 때면 사람도 배도 그 속에 파묻히고 말며. 밤을 세워 돗대를 잡고 있어야 하고, 바람이 없으면 오도 가도 못하고 바다 한 가운데 멈추어 버린다고. 파도가 쳐서 배의 뒷부분은 부서지고 자동기계는 고장나서 일일이 수동으로 조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루에 한 끼를 찾아 먹는 것도 호사스러운 일이며, 이제는 죽음조차도 포기한지 오래되었다고. 그러나 기진맥진해 있는 가운데 저 멀리서 일본열도가 보이므로 부산항도 멀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희망을 가지고 소식을 보내왔다.

그는 내면적인 수행의 극한점 체험과 한미 우호, 국운 융창, 남북 통일, 세계평화와 법륜상전의 발원을 세웠으며, 2차대전 당시 태평양전쟁에 희생되었던 수많은 수중 고혼들과 일제 때에 강제 징용되어 희생당한 우리 선조들의 영혼의 왕생극락도 발원하고 있다고 한다.

지명 스님의 목숨을 건 항해의 수행은 우리 불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한다. 나라 살림은 어려워지고, 국론은 분열되며, 정치는 혼란을 거듭하고,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다.

국민들은 절망에 빠져 있으며, 허탈해 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일엽편주(一葉片舟)에 몸을 싣고 목숨을 건 지명 스님 일행의 구도행각이야말로 모든 국민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불퇴전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파도와 싸우면서도 바람에 의지하여 항해를 거듭하듯이 끝없는 인생의 고해(苦海) 속에서도 무명풍(無明風)이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중생의 근본이 무명이지만,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것도 무명의 번뇌 바람임을 안다고 하면, 고해의 사바세계야말로 수행의 최적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명 스님 일행의 태평양횡단 성공입항은 불기 2548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우리들에게 참으로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bkha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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