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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수와 한국불교의 미래

기자명 김민경
  • 교계
  • 입력 2004.05.03 15:00
  • 댓글 0

국적·인종 초월 인재발탁 아직 남의 얘기
불교방송 사장에 대만인 고용할날 올까

요즘 기자는 태국음식을 자주 찾는다. 에스닉푸드의 대표주자인 태국음식을 다시 본 것은 지난해 연등축제 기간에 태국대사관 후원으로 세워진 마켓에서 벼라 별 과일을 넣어 버무린 희한한 맛의 국수를 접하고서부터다. 여러 가지 향신료까지 넣어져 입안에 넣으면 적어도 다섯 가지쯤 되는 맛과 강한 향이 동시에 난무하는 태국음식은, 일상 탈출용 - 습관적 식탐 탈출용 음식으로 안성맞춤이다.

자꾸 찾다보니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의 맛을 전하는 곳도 여러 군데 알게 되어 입맛이 그리 보수적이지 않은 이와는 가능한 태국음식전문점에서 식사약속을 잡는다.

어제도 친구와의 그런 류의 음식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어떤 스님들의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네 분의 스님들이 사이좋게 둘러앉아서 몹시 행복한 표정들을 하고서 베트남 식으로 만들고 삶은 국수와 각종 채소무침을 나누어 들고 계셨다.

스님들이 좀 싫어하는 설정 가운데에 ‘식사 하면서 인사 받기’가 있다.
천진한 마음으로 눈 앞의 음식에 몰두해 있는데, 옆에서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인사하면 하는 수없이 거룩해지느라 입맛을 잃게 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짐짓 그분들의 자리에는 눈길을 안주고 우리에게 배정된 자리에 앉아 음식을 시킨 후, 불교와 먼 민간인의 눈으로 위장한 채 옆자리를 슬쩍 흘끔 거렸다.

네 분 가운데 한 분 이상은 외국인 스님이었다. 고향에서 ‘오리엔탈 음식’이라며 자주 접하던 음식이 문득 그리워져서 나오신 듯 했다. 운동선수처럼 체구가 커다란 서구 출신의 스님이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회색 승복을 입고서 베트남 국수와 태국식 스프를 들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제 어느 정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풍경들을 더욱 더 자주 만나게 될 수록 우리의 미래도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여긴다.

조계종 총무원 안에 외국에서 출가한 스님이 십 여명 이상 근무하고, 우리 법보신문사에도 인도쯤에서 건너온 싱 아무개니 하는 이름의 기자가 근무하고, 불교방송의 사장은 대만출신의 국제적인 기업인 가운데에서 모셔다가 일을 하게 한다면, 우리 한국불교는 얼마나 다른 모습을 얻게 될까 … 생각만 해도 참으로 즐거워지는 상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일상이 되어있는, 국적과 인종을 앞세우지 않는 인재의 발탁과 운용이 왜 우리나라, 우리 한국불교에는 여전히 ‘상상’으로만 머물러 있는지, 여러분은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충청도에 있는 선원 무상사의 선원장은 서구 출신의 대봉 스님이기는 하나, 무상사가 외국인 스님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선원이기에 가능한 일로 해석된다.

흔히, ‘문호를 개방한다’고 표현들을 하지만, 그것도 속으로는 제약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개방한다’는 문장 그 자체에 이미, 개방에의 두려움과 개방에까지 이르는데 대한 부담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개방이나 융화는, 그러한 단어들 마저도 의식이 되지 않을 정도의 일상성으로 이뤄져야, 참 개방-참 융화가 된다.

〈대승파유론〉에, 우리네 범부의 분별심에 대한 애착이 ‘마치 달 속에 여러 가지 물체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세상이 무실(無實)하건만 분별하는 까닭에 분별하는 마음이 생긴다’고도 했음을, 태국 스프의 낯선 맛을 애써 입에 익히며 떠올렸다.

김민경 부장 mkkim@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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