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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에서 선객으로” 보살들의 선불장

기자명 김형규

서울 성북구 전등선림(傳燈禪林)

15시간 가행정진…일년 2번 안거

매달 15일 점검…화두·믿음 필수


<사진설명>전등선원은 국내 대표적인 재가여성불자들을 위한 전문 수행도량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30여 명의 선기(禪氣) 번뜩이는 주부들이 치열하게 정진하고 있다.

봄도 중순으로 넘어가는 4월 끝자락. 서울 성북구 북악산에 있는 전등사(傳燈寺)를 찾았다. 간만에 내린 봄비가 추적추적 대지를 적시고 도심의 소음이 빗소리에 갇혀 사위가 고요 속에 잦아들었다. 복잡한 도로를 벗어나 서울의 허파라 할 수 있는 북악산의 초입에 들어서자 전등사와 길상사의 입간판이 보인다. 입간판은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그 끝자락에 비를 맞으며 전등사가 서 있다.

전등사는 근대 호남의 선지식 해안 큰스님의 법맥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 곳이다. 30년 동안 이곳을 바탕으로 참선 정진과 전법을 통해 스승 해안 스님의 뜻을 잇고 있는 주지 동명 스님이 3년 전 중창 불사를 원만히 회향하면서 도심 포교당으로 손색없는 사격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전등사를 단순한 포교당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등선림(傳燈禪林) 때문이다. 미로를 통과하듯이 현대식 건물인 대웅전을 지나 뒤편으로 나가면 포교당에 걸맞지 않은 앙증맞은 돌계단과 아름다운 꽃나무가 나오는데, 그 끝자락 아담한 전통 한옥 건물이 바로 전등선림(傳燈禪林)이다. 전등(傳燈)에 선(禪)자가 붙어있으니, 짐작을 했겠지만 참선을 하는 곳, 그러니까 선방이다. 그러나 이곳은 특이하게도 스님이나 거사가 전혀 없다. 보살들만이 모여 정진하는 국내에 찾아보기 드문 보살선방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등선림이 단순히 보살선방이어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니다. 맹귀우목(盲龜遇木)의 인연처럼 이곳은 바른 수행법, 양명한 수행공간, 그리고 참다운 선지식이라는 3가지 수행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그래서 여간해서는 만나기 힘든 곳이다. 이런 조건들 때문에 치열한 수행 가풍이 살아있는 대표적인 재가선방으로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전등선림의 수행 일정은 말 그대로 용맹정진의 연속이다. 동안거, 하안거가 기본인데, 안거를 제외한 기간에도 선방의 문을 열어 개인별로 자유수행이 이어진다.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기 위한 보살들의 분심은 이제 갓 출가한 눈 푸른 납자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오전 8시부터 시작되는 하루 일과는 2번의 공양 시간인 3시간 30분을 제외하고, 저녁 9시까지 꼬박 참선 수행이다.

특히 선림에서 상주하며 한철을 나는 이들의 수행일정은 더욱 빡빡해서 새벽 3시 30분에 시작돼 저녁 9시까지 15시간 이상의 가행정진으로 이어진다.
1970년대 전등사와 인연을 맺은 이후 20년째 화두 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박임분(지혜심. 60) 씨는 “자녀 문제, 남편 문제, 시댁 문제 등 가정주부로서 고민이 적지 않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수행에 불참하거나, 자리를 비우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며 “경책을 위해 죽비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을 만큼 수행에 대한 열정들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주지 동명 스님도 “보살들 대부분이 가정주부다보니 선방에 오기 전 집안 청소는 물론 남편과 아이들의 출근 준비 등 크고 작은 가정 일들을 모두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스님이나 거사들에 비해 훨씬 어려운 여건 속에서 수행하고 있다”고 밝히고 “10년도 넘게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수행을 하는 보살도 있을 만큼 마음가짐들이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전등선림 대중들의 수행 열정이 이처럼 남다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황톳빛 은은한 정갈한 대중방. 인원도 번잡하지 않은 30명 안팎이다. 여기에 매달 15일 주지 동명 스님의 독대아래 실시되는 입실지도는 불퇴전의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등선림에 방부를 들이기 위해서는 화두에 대한 신념과 분심이 필수적이다. 만약 화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부족하면 3일에서 7일까지 참회 기도를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주지 스님에게 화두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스님과의 독대와 문답 끝에 이뤄지기 때문에 모두에게 방부를 들이는 것이 허락되지는 않는다. 참고로 전등선림의 한달 보시금은 출퇴근 5만원, 상주수행은 15만원으로 저렴하다. 02)762-0643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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