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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오타니大 아라마키 노리토시 (荒牧俊典)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印 베다 철학-中 남종선 섭렵 日 대표 문헌학자

교토대 나가오 교수서 유식불교 사사… 논저 다수

‘문헌학적 층위분석’ 통해 붓다 근본전회 순간분석


만약 교토의 국제교류회관 행 지하철안에서 알지 못할 문서들 속에 머리를 파묻고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노학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가 오타니(大谷) 대학의 아라마키 노리토시(荒牧俊典) 교수가 아닐까 한번쯤 의심해도 좋다.

아라마키 교수의 지하철 내 연구는 교토의 불교학자들 사이에선 교토 스토리(京都物語)의 일부가 된지 오래이다. 흔들리는 객차 안에서 탄생한 세칭 아라마키류(類)의 불교학은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사상사적 구상과 비판적 방법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아라마키류의 불교학은 불전(佛典)에 대한 문헌학적 층위 분석(text-stratum analytical)위에 자신만의 철학적 조망이나 구상(具象)적 상상력을 덧붙여 불교사상사의 주요 국면들을 서사적 감동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아라마키류 불교학, 지하철서 탄생

사실 아라마키 교수는 교토대의 나가오 가진(長尾雅人) 교수 밑에서 유식불교 연구로 불교학에 입문했다. 그러나 인도 베다 철학에서부터 중국의 남종선까지를 포괄하는 아라마키 교수의 광범위한 연구실적은 더 이상 그를 특정 문헌 연구가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하게 했다. 물론 60여 편에 이르는 그의 논저는 대승 십지(十地) 개념이나 유식 삼성설(三性說)에 대한 연구, 남조의 교판에 대한 연구 등 주목할 만한 개별 연구 성과를 포함한다. 특히 나가오 교수 감수의 『大乘佛典』 시리즈 중『十地經』,『唯識三十論』등의 현대어 번역이나 『섭대승론(攝大乘論)』의 환범(還梵) 텍스트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연구 업적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아라마키 사상의 총화인 “근본전회(根本轉回)” 개념의 탄생을 위한 기초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아라마키 교수가 구상하는 “근본전회(根本轉回)”란 특정 종교사상가가 체험하게 되는 사상적 전회가 단지 개인적 차원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정체된 시대에 하나의 대안이 됨으로써 사회화되고 역사화되는 것을 말한다. 유식불교의 ‘전의(轉依)’ (āśrayaparivŗtti) 사상에 뿌리를 둔 근본전회 개념은 헤겔류의 역사철학이나 니시타니 게이지(西谷啓治)의 실존철학과 융합함으로써 불교사상사의 주요 고비에서 역사적 실존으로서의 고뇌하는 인간을 발견한다.

“혁명은 시대를 고민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먼저 찾아온다” 라는 아라마키 교수의 말은 이런 문맥에서 이해된다. 종조 고타마 붓다, 대승불교의 창시자 용수(龍樹), 유식불교의 틀을 완성한 무착(無着) 등과 중국 북조불교의 완성자 담연(曇延), 남종선의 개조 육조 혜능(慧能) 등은 모두 시대적 과제와 대결하고 그 해결방안을 제시한 근본전회의 역사적 사례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라마키 교수의 원시불교 연구는 초기불전에 대한 층위분석 작업을 통해 고타마 붓다라는 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근본전회의 순간을 포착해 내는 것이다. ‘문헌학적 층위분석’이란 특정 문헌이나 교리를 형성과정의 시간적 층위별로 나눔으로써 그 순수 원형에 접근해 가는 방법론을 말한다. 더욱이 이 경우 같은 불교문헌이라도 내용의 가감이 심한 산문경전보다는 운율이라는 잠금장치로 개작이 쉽지 않은 운문경전이 붓다의 근본진리에 가깝다고 본다.

운문경전은 또한 동시대의『우파니샤드나』나 자이나교의 초기경전 등과 같이 동일한 운문 형식을 지닌 인도 게송(gāthā)문학들과의 비교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이를 통해 고대 인도사상계를 풍미했던 고행자 전통 전체의 문맥 속에서 고타마 붓다가 제시한 메시지의 사상사적 의미를 재조명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Some Precursors of the Subconscious Desire』라는 논문에서 아라마키 교수가 불교운문경전, 그 중에서도 특히 최고층에 속하는『수타니파타』(suttanipāta)의『아타단다숫타』(attadaņdasutta)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논문에서 아라마키 교수는 붓다가 인간존재를 윤회의 폭류(ogha)에 휩쓸려 표류하는 구멍 난 배에 비유하는 것을 단지 문학적 수사의 차원에서만 읽지는 않는다. 『우파니샤드』, 자이나의 초기경전, 『마하바라타』 등을 통해 형성된 윤회 개념에 대한 논쟁사적 맥락을 고려함으로써 이 폭류의 비유를 사상사적 과제에 대해 붓다가 제시한 처방의 일부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유식불교연구에 있어서도 아라마키 교수는 2000년과 2002년도에 연이어 발표한 「Toward an Understanding of Vijnaptimātratā」와「미륵논서における 허망분별の起源について(弥勒論書における 虛妄分別の起源について)」라는 논문에서 1982년, 절친한 동료이자 영원한 라이벌인 슈미트하우젠 교수와의 공동세미나 이후 그가 줄 곧 구상해오던 초기유식불교문헌의 형성사에 대한 개략적인 지형도를 제시한다.『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신구층으로 분석한 뒤『해심밀경(解深密經)』에 등장하는 유식불교의 주요 개념들과의 상호연관관계를 밝힘으로써 초기유식불교의 형성기에 나타난 사상적 전회의 순간들을 구체화해 가는 것이다.

『유가~』분석…유식 신개념 밝혀

일례로, 유식(唯識) 개념의 경우에도 이 개념이『해심밀경(解深密經)』의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에 최초로 등장한다는 것은 슈미트하우젠 교수 등에 의해서 이미 논증이 끝난 문제이다. 그러나 유식 개념이『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중 『보살지(菩薩地)』 진실품(眞實品)에 나오는 “무분별지(無分別智)에 들어가기 위한 보살행 체계”를 사상적 배경으로 탄생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아라마키 교수의 공헌이다. 더욱이 이 개념이 여래와 보살이 선정체험을 매개로 유식의 진리를 전달하고 전달받는다는 대승불교적 소통의 메카니즘, 다시 말해 “교수의 근본구조”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음을 논증한 것은 유식 개념의 인식론적 구조에 치중하는 우리에겐 신선한 자극이 아닐 수 없다.

사상사적 전개의 필연성을 꿰뚫는 아라마키 교수의 안목은 자신의 중국불교 연구성과를 결집한『북조수당중국불교사상사(北朝隋唐中國佛敎思想史)』서설에서 북위의 담연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편저자로 지목하는 대목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종래 『대승기신론』이 마명 저작이 아니라 중국 찬술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아라마키 교수는 북조사상사 전반의 흐름과 담연 저작인 『대승기신론의소』의 내적 정합성에 기초하여 담연을 『대승기신론』의 찬술자로까지 상정한 것이다.

처의 출산을 앞두고 귀국하는 필자에게 아라마키 교수가 들려준 『라마야나』의 도하다 (dohada) 스토리는 역사의 전회를 꿈꾸는 노대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게 해 준다. “두 마음”을 뜻하는 도하다는 태아의 마음까지 덧보태어진 임산부의 간절한 소원을 말한다. 이는 국운마저 뒤바꿀 수 있는 강렬한 주술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될 성질의 것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작은 행동이 역사의 전회를 꿈꾸는 것 이상으로 소중함을 아라마키 교수는 인도문학을 들어 설명한 것이다. 필자는 몇 해 전에 버클리대의 로스팟 (Alexander Von. Rospatt) 교수가 왜 아라마키 교수를 칭하여 세계불교학계에서도 ‘존경받는’ (respected) 학자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 깨닫게 된다.

UC 버클리 대학교 박사과정
박창환 chp@uclink4.berkeley.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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