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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경허 스님 (1846∼1912)

기자명 탁효정

한국 근대 선 중흥조

1912년 4월 26일 입적

한국 근대선의 새벽을 밝힌 인물을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없이 답하는 인물이 바로 경허 선사이다.
한국 근대선의 중흥조 경허 선사는 1846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에서 태어나 9세 때 의왕 청계사에서 계허 스님을 스승으로 출가했다. 이후 동학사에서 강사로 활동하던 경허 선사는 위없는 깨침을 얻기 전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한 뒤 턱 아래에 송곳을 두고 생사를 건 화두참선에 들어갔다. 어느날 “소가 코뚜레를 꿸 콧구멍이 없다”는 한 처사의 말에 활연대오한다.

경허 선사가 이를 게송으로 지었으니 “홀연히 코뚜레를 꿸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몰록 삼천대천 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유월 연암산 아랫길에/들사람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라는 유명한 게송이다.
일대사(一大事)를 마친 경허 선사는 이후 천장사, 개심사, 수덕사, 동학사 등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선풍을 떨쳤다. 전국을

턱 아래 송곳 두고 정진

유랑하는 과정에서 불경을 뜯어 문종이로 사용하거나, 단청불사를 한다고 모은 돈으로 술을 마셨다거나, 물동이를 이고가는 새색시의 입을 맞추고 몰매를 맞으면서 껄껄 웃었다는 등 기이한 행적을 남긴 것은 유명한 일화들이다.
경허의 삶에 대해 후대인들은 상반된 평가들을 내려왔다. 경허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은 한국의 달마, 한국 선종의 거장, 근대선의 중흥조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계율과 교학은 무시한채 지나치게 선만을 강조한 나머지 이후 후대 수행자들에게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는

대중 속의 선 추구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경허가 한일합방이라는 시대적 모순을 외면하고 개인의 수행에만 치중함으로써 불교가 대사회적인 면에서 소극화되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관점에 따라 경허 선사의 삶에 대한 평가는 상이하지만 그가 근대 한국불교계를 세우는 중추적 역할을 했으며, 꺼지기 직전의 한국 선풍을 진작시켰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경허는 생애를 통해 선의 생활화·일상화를 모색했으며, 산중에서 은거하는 독각선(獨覺禪)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선의 혁명가로 평가받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과 중국불교 선문의 중요한 어록과 논을 엮은 『선물촬요』가 있으며, 그가 남긴 행장과 어록은 이후 제자들에 의해 『경허집』으로 출간됐다.


<사진설명>경허 스님이 주석했던 예산 수덕사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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