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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만이 최상의 능사일까?

기자명 법보신문
일 진 스님
운문사 강원 학감


또 한바탕의 봄은 갔는가? 길다고 느껴지는 철이 우리나라 4계절 중 대개는 겨울인 것이 보통인데 윤달이 들어있던 올해 갑신년 봄이 유난히 긴 철이라고 느껴진 것은 음력으로 2월을 두 번 이나 지나야 했으니 당연한 것 같다. 더욱이 음력을 중심으로 석 달을 한철로 하여 살아가는 산중대중 생활에서의 한 달이라는 기간은 여간 긴 것이 아니다.

어찌 되었건 온통 얼어붙었던 도량이 풀리고 보송보송 죽은 듯 했던 나무에 수물수물 초록의 문이 열리면서 장엄한 생명의 용솟음을 온 몸으로 느끼고 볼 수 있었던 찬란했던 봄은 이제 서서히 신록으로 물들면서 자리를 떠나고 있다. 떠나고 변하는 것이 어찌 봄뿐이겠는가? 이 봄철에 자리를 떠난 이들은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많았다. 자기 것이라고 굳게 여겨왔던 '자리'를 떠난 이, '정계(政界)'를 떠난 이, '이승'을 떠난 이들, 봄의 따스함이 한 때이듯 건강도 젊음도 한때이며 결국 그것은 떠나게 된다. 행복이 한때라면 불행 또한 그러한 이치. 모양 지워지고 이름 붙여진 것은 모두가 변화하고 떠나는 것은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불교의 핵심적 진리이다.

사방 어디를 보나 봄은 갔고, 생을 통하여 이 아름답고 찬란했던 봄을 얼마나 더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감상에 젖어 보기도 한다. 올해의 봄. 우리 모두가 선택하고 결단하고 그리고 씨앗까지 뿌린 봄다운 봄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생각하면 참으로 역사적인 '봄'을 지낸 셈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들을 한다. '올해의 봄이야말로 가장 역사적인 계절이었다'고, 그리고 '그 봄에 치러진 잔치야말로 현명하고 절묘한 선택을 한 것이다'라고. 나는 사실 세상일이나 정치를 알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선택하고 파종한 현 상황에서 인류의 스승이신 불보살의 교훈을 생각하게 된다.

그 분은 왜 하필 봄에 탄생 하셨을까? 아기 싯달타 태자의 봄 탄생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춥고 길었던 동결의 계절이 지난 뒤 따뜻하고 밝은 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그저 느낄 수 있다.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일은 참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면 불보살의 봄은 어떻게 보고 보내졌는가. 『화엄경』에서 '지지행처 행행지처(至至行處 行行至處)'라는 말씀은 두고두고 명심이 되는 말씀이다. 절대적으로 가기만 하는 일 없고 끝까지 머물지 만은 않는 불보살의 오고감. 그래서 가되 감이 없고 머물되 머무는 바 없는 불보살의 자취이고 보니 그렇게 자리를 떠나는 것만이 또 떠나게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개혁(변화)만이 최상의 능사는 아니다. 방법과 과정에서 그 어느 것도 절대화(絶對化), 고정화(固定化) 시키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깨어있는 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불보살의 환과 같은 지혜의 자비(如幻悲智)로 우리 모두는 많이 베풀고 많이 사랑해도 결코 대가에 기대하진 않는 풍성한 역사의 여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 곳에서 몸도 마음도 무성하고 풍요롭게 성장하는 넉넉한 여름살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름이 주는 녹색은 눈의 피로도 덜어주지만 정신적인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원기를 다시 찾게 해주고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
우리는 푸르름의 계절을 겸손과 넉넉한 마음으로 보내고 또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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