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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은 불교적으로 세상보는 눈

기자명 법보신문
허 우 성 huh111@hitel.net

경희대 철학과 교수






시론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신문사는 이에 대한 취지나 지침이 있을 것이지만 필자 나름대로 한 번 생각하고 싶었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일어난 사건 가운데 뭔가를 골라 그것에 대해 평을 붙여 독자와 공유하라는 뜻이 담겨 있을 듯싶다. 단순한 사건 나열로 논이 될 수 없음은 누구든 금방 알 수 있다.

시간 속에 사건이라고 해도 그 속에 불변의 것을 포착하여 회향하는 일이 시론을 쓰는 사람의 사명이 아닐까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도 진리의 면을 볼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俗도 보고 眞도 깨달은 자 만이 시론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시간에 대한 태도에 두 가지가 있다고 해보자. 영원을 강조하여 시간 속의 사건은 무시하는 경우와 시간 내의 사건 속에 심취하여 그 사건을 절대시하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때(時)를 볼 수 없어서 탈이고, 후자는 변화무쌍한 부침 속에 휘말려 들어가 참(眞)을 볼 수 없어서 탈이다. 그래서 시간에도 영원이 개입할 수 있다고 믿는 자 만이 시론을 쓸 수 있다. 劫外와 劫의 말을 빌려본다면, 겁외를 강조하는 자라면 俗을 놓치기 쉬우며, 겁의 속된 사건만을 나열한다면 이는 ‘논’이 못된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에 지성(智性)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런데 그 의미는 요즘과는 상당히 달리, 생멸의 움직임 속에서도 부동이 있음을 아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가리킨다. 고뇌 속에서도 불성의 존재를 놓치지 않는 능력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시론은 그렇다면 불교적 지성의 발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시론의 ‘시’가 생멸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를 가리키고, ‘논’이 불교적 지성을 발현하여 그 생멸하는 사건 속에서 不動의 것을 포착하는 것이어서, 이 둘이 합해져야 올바른 시론이 될 것이다. 불교적 지성의 발현은 겁을 살면서 겁외를 봄이다. 지성의 발현으로 우리는 생멸·부침하는 사건 속에 부동의 진여의 면을 볼 수 있다.

불교적 지성인은 생멸 속에 영원을 보려는 자이다. 이런 지성의 존재가 바로 무한가지 생명행위를 가능하게 하면서도 그 행위에 대해 판단을 내리게도 한다. 생명의 발현과 판단, 이 두 가지 능력을 겸비한 자 만이 좋은 시론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원효나 만해 같은 이가 불교적 시론이나 평론을 쓰기에 가장 적합해 보인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이 진속불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면 반야심경과 불교 시론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신문의 시론은 하지만 대다수 중생(民)들이 처한 상황이나 성향을 성찰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매스 미디어의 무한 확대는 경탄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노예화할 수 있는 육근의 연장·확대의 관점에서 봐야 하고, 자유민주주의 제도는 그것이 약속해 주는 자유가 어떤 의미에서 非法인지, 자본주의 제도는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불평등·부조화를 얼마나 해소할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국가주의·반일감정·지역정서 등은 우리가 축적해 온 업·집단적 (무)의식이 드러난 것이고, 이 집단의식은 7식이나 8식이 우리를 속박한 결과라는 유식불교의 진단과 처방에서 봐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하자면 무명풍의 생멸 속에서도 엄존한다는 지성을 발현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일, 이는 불교 지성인만의 의무가 아니라 모든 불교도들의 의무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 속에서 의무를 잘 수행할 때 시론은 참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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