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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원형논쟁 1- 홍예석

기자명 법보신문

홍예석 부정, 비현실적-왜곡된 주장

첨차석 양 끝에 파인 홈…홍예석 놓인 증거
상하 2단 구성된 日신사 도리…유사성 없어

석굴암 논쟁 한쪽에 주실 입구 쌍석주 상단에 걸쳐 있는 홍예석이 자리 잡고 있다. 1910년경 사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일제가 1913년의 1차 보수공사 때 얹은 후, 우리 손에 의한 1960년대 보수공사에서 존치 시킨 무지개 모양의 석재가 그것이다. 그로부터 그것은 석굴암의 원형을 파괴한 흉물이라는 비판 속에 천덕꾸러기가 되어 왔다.


<사진설명>홍예석이 놓인 현재의 석굴암 본존불 모습.



홍예석의 부당성을 최초로 제기한 이는 전 서울대 남천우 교수이나, 그 주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강조해 온 이는 현 이화여대 강우방 교수이다. 요컨대, 일인들이 석굴암의 상징성을 모독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일본신사의 도리이[鳥居]를 본 따 제작 추가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1960년대의 보수공사를 맡은 전 동국대 황수영 교수가 그것을 그대로 둔 것은 그들의 ‘교묘한 술책’을 추인해준 경우로, 하루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신영훈 씨도 같은 견해인데, 그러나 거기에는 논리의 비약과 독선적인 자료해석이 숨어 있다.

홍예석은 불국사에도 있다

첫째, 강우방 교수는 본 사진첩의 본존불 사진을 근거로 제시하지만, 거기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홍예석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모순이다. 원래 거기에 시설되어 있던 무엇인가가 사진 촬영 이전에 추락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 사진에는 희미하지만, 같은 시기의 다른 사진들에는 양쪽 첨차석 끝으로 일정하게 파인 홈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홈에 눈덩이가 맺혀 있는 사진들도 익히 알려져 있다. 두 첨차석의 동일한 지점에 동일한 폭과 깊이로 파인 홈들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무엇인가가 가로로 걸쳐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의 용도나 성격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따라야 한다.


<사진설명>1912년 촬영된 석굴암 본존불 모습. 우측 첨차석 끝으로 '|_|'홈이 선명하다.(우측 아래 확대 사진)


셋째, 홍예석과 일본신사의 도리이는 유감스럽게도 어느 한 구석 닮은 데가 없다. 알다시피 도리이의 가로 부재인 누끼[貫]는 흔히 상하 2단으로 구성되나, 홍예석은 그것 하나뿐이다. 또, 누끼 둘이 직선으로 평행을 이루거나, 혹은 상단 누끼만 양끝이 위로 휘어지는 도리이에 비해, 홍예석의 경우는 가운데가 부드럽게 솟은 말 그대로 무지개형이다. 그러므로 홍예석이 도리이를 모방했다는 것은 ‘사슴을 보고 말이다’라고 하는 식의 사실 왜곡이다.

넷째, 홍예석과 비슷한 건축부재를 찾자면 굳이 남의 나라까지 갈 이유가 없다. 다름 아닌 불국사에 그것과 유사한 석재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자하문으로 통하는 백운교 위쪽 바로 아래 아치형 다리의 그 아치형 석재도 홍예석과 닮았지만, 안양문 앞의 연화교와 칠보교를 잇는 아치형 운제(雲梯)의 양쪽 외곽 석재들은 더더욱 여일하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중앙부가 솟아오른 데다 끝부분의 처리도, 위치가 석주들 중간이란 사실도, 받침돌에 홈을 파고 석재의 끝부분을 걸쳐놓은 수법도 영락없다.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동시에 건립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면, 두 사찰에 닮은꼴의 부재들이 시공된 것은 하등 기이한 일이 아니다.

등등의 이유로, 석굴암의 두 기둥 사이에는 현 홍예석이나 그것과 흡사한 석재가 시설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점은 당시 사진들에서 양쪽 첨차석 위의 돌기둥들이 각각 수직선상에서 뒤로 밀려나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그것은 주실 돔 지붕의 전면부가 붕괴하면서 두 기둥이 제자리를 이탈했을 것인데, 그때 두 기둥 사이에 끼어 있던 홍예석이 균형을 잃고 추락한 것으로 보아야 옳다.

한편, 조형적 측면에서 보아도 홍예석은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한다. 참배자가 전실에 섰을 때, 비도의 아치형 전문(殿門) 및 사천왕이 새겨진 좌우의 판석, 그리고 주실 입구의 쌍석주는 이중삼중의 액자 구실을 담당한다. 참배자의 시선이, 차츰 좁아지는 각 부재의 입체적인 윤곽선을 따라 오직 주실 중앙에 봉안된 본존불 한 분에게 집중되도록 처음부터 치밀하게 설계된 결과이다.

<사진설명>강우방 교수가 '홍예석이 없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91년 한국일보에 공개한 사진.

그럴 때 비도의 아치형 천정 석재들이 짓는 완만한 곡선들은 홍예석에 이르러 최종 마무리되는데, 만약 홍예석이 없으면 그 자리가 공백으로 변한다. 결국 참배자의 시선이 초점을 잃고 허공으로 분산되어, 신라건축가의 조형의도가 근본적으로 훼손당한다. 홍예석은 석굴암의 비도와 주실의 파사드(정면 이미지) 구성상 필수요소인 것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그것의 역학적인 측면이 있다. 그것이 좌우의 두 기둥이 안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사진설명>홍예석 양식과 유사한 불국사 칠보교.


추측컨대, 일인 기술자들은 사전조사를 통해 양쪽 첨차석의 홈 자국을 인지하고 있었을 터이고, 본 공사에 앞서 바닥에 쌓인 토사와 돌덩이들을 정지하던 중에 현 홍예석이나 그것과 유사한 석재를 발견했을 것이다. 이어서 그것이 양쪽 홈에 부절(符節)처럼 맞물린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체 공정에 따라 시설했으리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물론 그때는 불국사의 홍예석들을 당연히 참고했을 것이다. 그것의 표면 입자나 빛깔이 다른 석재들과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데, 당시 많은 석재들을 새로 제작 교체했듯이 원래의 것이 파손되어 그대로 쓰기가 어려워 다시 제작한 것으로 판단해도 무리가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홍예석에 관한 한 1910년대 및 1960년대의 보수공사는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지지를 받아 마땅하다. 필자는 일인들이 그것을 추가한 사실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또한, 황수영 교수가 혹 그것을 제거했다면, 석굴암의 조형적 원의(原義)를 우리 스스로 유린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으리란 점에서 역시 고맙게 생각한다.

<사진설명>日 신사 입구 도리 모습. 홍예석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조형-역학 측면서도 그 자리에 있어야

정작 일인들이 당시 보수공사에서 그것을 시설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지금껏 그 자리가 비어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내내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없이 유치한 상상이지만, 그 동안의 모습에 비춰 볼 때 원형론자들은 현재까지의 태도와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곧, 첨차석의 홈 자국을 뻔히 알면서도 일인들이 의도적으로 묵살했다면서, 아울러 황수영 교수에게도 부실공사의 혐의를 씌워 비난을 가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강우방 교수 등은 첨차석의 홈 자국이 선명한 1910년 전후의 다른 사진들을 외면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가설에 반하는 자료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기에 족하다. 우문이지만, 만약 석굴암의 홍예석이 잘못된 것이라면, 과연 불국사의 홍예석들도 일인들이 시설한 것으로 간주한 것인지, 그래서 철거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런 근거 없이 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하면서까지 무조건 일인들을 매도하는 일이야말로 악의적이며, 학자가 지켜야 할 금도와도 거리가 멀다.

끝으로, 강우방 교수는 동해의 아침 햇살이 본존불의 상호에 비치는 신비로운 장면과, 홍예석이 본존불의 시야를 가린다는 점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문학적 수사에 불과하다. 『미의 순례』등에서 황수영 교수에게 “비록 과거에 실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진실이 밝혀지면 실수를 고치는 성실성과 순수성이 있어야 하겠다.”라고 충고하고 있지만 그 구절은 오히려 강우방 교수 본인이 재음미할 때이다.

재야미술사학자 성낙주 chakrab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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