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⑤ 원형논쟁 4- 비도 입구의 석문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04.06.15 10:00
  • 댓글 0

목조대문 설치하면 본존불은 유폐된다


<사진설명>(사진1) 전실 입구에서 바라본 석굴암의 정면 이미지. 비도 출입구에 목조대문이 있었다면 현재의 웅장한 본존불의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석굴암의 위대성은 단지 불교조각의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 건축요소와 조각요소의 절묘한 결합과, 서로 무관해 보이는 각각의 건축부재 및 개성에 족한 성상(聖像)들이 혼연일체를 이룬 데에 석굴암의 진정한 의의가 있다. 그러한 원리는 공간구성에서도 고스란히 관철되어, 주실 및 전실과 비도라는 서로 이질적인 세 공간은 한 폭의 조화롭고 장엄한 만다라를 완성한다.

그리하여 전실 앞에 선 참배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감동과 법열의 시간이 기다린다. 전실 좌우의 신중들 및 두 인왕, 비도의 네 사천왕이 옹위하는 가운데, 주실의 쌍석주 안쪽으로 은연히 떠오르는 붓다의 자비위용 앞에 저절로 몸과 마음을 낮추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석굴암 건축가의 주도면밀한 용의(用意)의 결과로, 석굴암 읽기에서 그것은 절대의 준칙으로 존중되어야 한다.〈사진1:석굴암 정면사진〉

하지만 그동안 제출된 백가쟁명식의 견해 중에는 유감스럽게도 그 점을 몰각한 주장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는 〈도면1:신영훈 석굴암〉에 나타난 대로, 비도 초입에 한쪽의 폭이 1.8미터, 높이가 3.6미터에 이르는 육중한 나무대문이 달려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전 서울대 남천우 교수와 신영훈 선생이 그 주창자인데, 요지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사진설명>(도면1) 신영훈 선생 등이 제시한 목조대문의 설계도.

〈도면1〉에서 보듯, 비도 입구에는 원래 두 인왕상 판석 위를 가로지른 장대석들이 중앙 방향으로 돌출되어 있었고, 그것들 밑면에 구멍(홈)을 파놓고, 또 좌우 기둥 주초석들 윗면에도 역시 구멍이 있어, 그 구멍들에 문짝의 지도리를 끼우고 자유롭게 개폐했다는 것이다. 특히 신영훈 선생은 그 문이 조선시대까지 존재했으나 일제 때의 수리공사에서 그 흔적을 말살했다고 단언하면서 “문화후진국의 천박한 토목기술자의 좁은 식견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일인들을 힐난하고 있다.

그러나 목조대문이란 것은 석굴암이 지향하는 세계와는 공존이 불가능한 흉물일 뿐이다. 출발부터 과장된 논리와 왜곡된 자료 위에 기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야기될 부정적 현상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좌우 인왕상 위로 장대석들이 튀어나와 있었다는 주장부터 근거가 빈약하다. 1910년 무렵 촬영된 〈사진2〉를 보면, 장대석들의 존재를 추정할 만한 단서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인왕상 위에는 각기 다른 형태의 석재들이 무질서하게 포치되어 있었을 뿐이다. 붕괴를 막기 위해 누군가 응급처방을 한 것인데, 다른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장대석 운운은 공상에 불과하다. 일인들에 대한 비난도 공연한 트집일 뿐이다.


<사진설명>(사진 2) 1910년 무렵의 석굴암 정면 모습. 좌우의 인왕상 판석 위의 석재들 모습이 들쑥날쑥하다. 목조 대문을 달았다는 장대석들의 증거를 찾아 볼 수 없다.


둘째, 〈도면2〉는 1913년 보수공사 이전의 석굴암 실측도면으로, 비도 입구 양쪽의 네모난 주초석에 각각 ①로 표시된 동그라미들이 지도리 홈이라는 설명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을 비교해 보면, 크기에서 차이가 남을 쉽게 알 수 있다. 신라건축가들이 같은 문짝의 지도리 홈들을 다르게 파놓을 리가 없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결코 지도리 홈 자국으로 보기 어렵다.


<사진설명>(도면2) 1910년대 일제의 보수공사전 석굴암 평면도. 비도 입구 양쪽의 ①로 표시된 동그라미들이 목조대문의 지도리 홈자국이라는 것이 신영훈 선생의 주장이다.

셋째, 문헌사료에 대한 해석은 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조선시대 선비 우담 정시한(1688-1707)의 기행문인『산중일기(山中日記)』 중 석굴암 탐승 부분에 대한 신영훈 선생의 설명이 그 일례이다. “돌문 밖 양편에도 불상을 새겼구나(石門外兩邊皆刻佛像)”라는 구절에서 ‘석문(石門)’을 ‘목조대문’이라고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덩어리가 졸지에 나무로 둔갑한 형국인데, 문제의 ‘석문’이 돌로 된 출입구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 점은 뒤에 오는 “석문은 돌을 무지개 모양으로 다듬었다(石門攻石如虹)”에서 당장 확인된다. 석문의 소재(素材)는 돌[石]이고, 형상은 무지개[虹] 모양이라는 뜻으로, 정시한은 현재 우리가 보는 바와 똑같거나 유사한 아치형의 비도를 보고 그 솜씨에 찬탄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의 글은 비도에 아무것도 없었음을 나타내는 정반대의 증거로 채택되어야 옳다.

이상의 몇 가지 지적만으로도 목조대문의 허구성은 충분히 감지된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그것이 시설되었을 때 벌어질 사태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그곳에 목조대문을 달면 본 전실과 비도 및 주실이 별개의 공간으로 분리되는 역기능이 발생한다. 세 공간을 상호 소통하는 통일적인 공간으로 설계한 석굴암 건축가의 기획의도가 일거에 짓밟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너무나 자명하다. 비도 및 주실 전체를 창고처럼 밀폐시켜, 본존불을 포함해 주실 안의 모든 성상들이 유폐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일반 사찰의 대웅전 내부를 두 토막 내는 것과 진배없는 폭거로, 예컨대 부석사 무량수전에 들어갔을 때 아미타불 앞에 거대한 장벽이 막혀 있는 장면을 떠올리면 납득이 갈 것이다. 게다가 그 문을 닫아놓으면 주실 내부는 대낮에도 암흑천지로 변하고, 여닫을 때마다 그 소음이 법당 내의 정밀한 분위기를 해치게 되리라는 점도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둘째, 무엇보다 그것은 전실에서 비도, 주실로 이어지는 건축구조의 변화무쌍한 연출과, 각 공간의 다양한 성중(聖衆)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한편의 파노라마 같은 석굴암의 정면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훼손시킨다. 닫아두면 본존불이 안 보이고, 젖혀놓으면 좌우의 인왕상 및 그 옆의 판석 신중들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전실의 팔부신중과 인왕, 비도의 사천왕, 그리고 쌍석주 안쪽에 정좌한 본존불을 동시에 감상하는 일이 영영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하나 더 지적하자면, 전실의 구조상 목조대문은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다. 석굴암의 판석 29매 모두의 너비는 똑같이 4당척(1.2미터)으로, 인왕상 판석도 4당척이다. 반면, 문짝 하나의 너비는 6당척(1.8미터)으로, 그것을 젖히면 전실의 좌우 안쪽 첫 번째와 두 번째 판석 사이에 부닥치게 된다. 신중상들의 피해가 우려되는데, 그것을 막자면 바닥이나 허공에 지지대를 또 설치해야 한다. 목조대문의 자유로운 개폐란 글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이밖에도 동의하기 어려운 견해 몇 가지는 지면관계상 생략하거니와, 필자는 석굴암이라는 절대침묵의 성소에서 함부로 삐거덕거릴 그 거대한 문짝을 상상하는 일 자체가 끔찍하다.
갈무리하면, 앞서 말한 바 석굴암의 참된 아름다움은 유기적 통일성에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세간과 출세간을 동시에 아우르는 붓다의 연기법 및 원효 성사의 화쟁(和諍)사상의 미학적 변용이다. 우리는 그것을 읽어내는 일만으로도 힘에 벅차다. 망령된 생각에 사로잡혀 정열을 소모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항시 갖는 바람이지만, 우리의 석굴암학이 하루 빨리 원형논쟁의 함정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소망한다.

재야미술사학자 성낙주 chakraba@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