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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의 참여불교

기자명 법보신문
허 우 성
경희대 철학과 교수




필자는 틱낫한 스님의 불교를 좋아한다. 불교 수업 시간에도 그 분의 책을 종종 사용한다. 이유는 그의 가르침이 불교의 핵심에 아주 맞닿아 있으면서도 접근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의 불교는 세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는 민족적 재앙이었던 베트남 전쟁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유형의 폭력을 경험했기에, 누구보다도 평화에 대한 희구가 강하다. 하지만 한 개인의 평화가 세상의 평화와 절대 무관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출발점이나 토대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 불교적이다. 그는 우리가 어떤 신념을 갖든 정치적 삶은 개인적 삶의 반향이라고 여기고 이 양자 사이에는 괴리도 조금도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이 점에서 틱낫한 스님은 간디나 만해와 비슷한 데가 많다.

불교가 도저히 인간 세상을 떠날 수 없다고 보는 스님에 따르면, 파도는 바다의 자연적인 나타남이니, 억누르거나 진압하는 것은 소용이 없을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으므로 우리는 가만히 파도를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감정이라는 파도의 근원은 바로 우리의 근원인 것이다. 감정을 따라 흘러가지도 말고 억압하지도 말며, 그저 마음 모아 바라보면 깨달음의 해가 비친다고 한 스님에게, 감정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에서 자연스런 일부이다. 그런데 감정의 격랑 속에서 마음을 모으자는 가르침에는 불교의 역동성이 한껏 드러나 있다.

왜냐하면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면 주로 골방이나 산 속 암자에 있어야 하는데, 스님은 세상을 돌아다니는 참여 행위를 자연스럽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뛰어 다니며 노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듯.

틱낫한 스님은 공관(空觀)이나 화엄경에서 말하는 “하나는 전체이고, 전체는 하나다(一卽一切 一切卽一)”라는 구절을 빌려 모든 현상들이 상호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가르침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상호의존에 관한 명상으로 들어가는 여러 문을 찾아 때로는 시인의 눈을, 때로는 과학자들의 눈을 빌리기도 한다.

스님은 생사 문제란 것도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본다. 우주만물의 상호의존성·나와 너의 상호의존성·을 깨달을 때, 진공과 묘유의 의미를 이해할 때, 그리고 과거·현재·미래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는 자각이 있을 때, 생사에 초연하게 된다고 했다. 진공묘유(眞空妙有)적 이해, 즉 우리가 있다고 해도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 묘하게 있다는 자각, 말하자면 나 홀로 우뚝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더불어 공존한다는 자각이 생기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해소된다는 것이다. 우리라는 존재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자각 속에서 만물에 대해 너그럽고 자비로운 태도로 살아갈 때, 죽음의 공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호의존성의 자각은 죽음을 이기는 열쇠이면서 동시에 만물에 대한 자비심의 근거이기도 하다. 갈등하고 증오하는 두 민족 사이에 평화와 우정을 기대하는 일은 잠꼬대와 같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자각이 없다면 무관심이나 피의 보복밖에 있을 것이 뭐 있겠는가?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들이 자연과의 상호의존성을 망각하여 자연을 부리고 착취하게 되면 자연은 자연스럽게 망가질 것이고, 인간 역시 멸망하고 말 것임을 스님은 경고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불교는 이른바 정치적·역사적 참여불교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참여불교다. 아니 이것이 불교의 진면목이 아닐까?

huh111@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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