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결제 구도의 여정
하안거 결제 구도의 여정
  • 법보신문
  • 승인 2004.06.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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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진 스님
부산 해인정사 주지


저 멀리 나지막하게 보이는 앞산엔 실처럼 구름이 걸려있고 그사이 모습숨긴 뻐꾸기는 슬픔을 자아내며 울고 있다. 구도의 길 결제의 시간. 그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결제란 물을 것도 없이 죽음의 시간이다. 나를 죽이고 상대를 존중하며 금강보검으로 내 안에 번뇌를 모조리 쳐 부시는 그리하여 영원을 기약하는 죽음의 시간인 것이다.

저 산 깊은 골짜기에 잠을 잃은 구도자가 있기에 내일은 아름다울 수 있고 행복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고인은 늘상 말씀하시기를 결제 중엔 할 일 없이 다니다가 몽둥이에 맞아 죽어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고 하였다. 그 만큼 결제는 구도자에게 소중한 시간이고 엄격한 발걸음인 것이다. 그리고 죽음으로 진리와 바꾸려는 철저한 몸부림의 시간인 것이다.

일찍이 철인의 아버지 소크라테스는 정치적 현상으로 독배를 맞이한 당신 앞에 목놓아 울부짖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그만 울음을 그쳐라. 그리고 나를 방해하지 마라.”
지금 이 순간 죽음이 무엇인지 관찰할 수 있도록 나를 방해하지 마라. 어쩌면 나는 일생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독약을 마셨다. 죽음이 무엇인지? 사지가 마비되고 감정이 정지되어 간다. 그러나 나의 존재는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다. 기억하라. 나는 아직도 그대로 이다. 라고 하였다.

참으로 성스러운 얘기다.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죽음 마저 사랑하는 그리하여 당신의 모습을 한껏 드러내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얘기. 영원한 교훈의 일화이다. 마치 한 구도자가 진리를 위하여 죽음 마저 사랑하는 그 모습과 너무도 닮아 보인다.
뻐꾸기 소리는 여전히 슬프게 다가오고 가슴 여미게 다가온다.
뻐꾸기의 슬픈 울음소리에 가끔은 꾀꼬리도 그 심정을 아는 듯 밝지만 슬픔스레 울어 보인다. 죽음 마저 버려 두고 진리의 세계 그 영원의 삶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는 구도자의 심정인양 슬피 슬피 애닯게 울어 댄다.

불굴불요(不屈不撓) 간두일보(竿頭一步)라 했던가.
구도자는 구도의 여정에 그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굴복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고봉정상(高峰頂上)을 향하여 내딛는, 그리하여 고봉정상에서 다시 한걸음 더 뛰어 오르는 각오의 순례자여야 한다. 누가 뭐래도 당신의 자유와 미래의 이타(利他)를 위하여 금강보검을 쓰는 성스러운 존재여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불교의 내일을 기약하고 사회를 밝게 해야 한다. 결제는 처절한 구도자의 여정이요 냉혹한 구도자의 아름다운 내일의 발걸음인 것이다.

살인검으로 가슴속에 일어나는 이원(二元)의 잔재를 모두 꺽어야 하는 구순(九旬)의 여로인 것이다.

우리는 그런 구도자를 존경하여야 한다. 구도자가 살아있으면 이 교단의 미래가 밝고 나아가 국가와 사회가 밝아지는 것이다. 이상의 세계는 금은보화로 장식된 나라가 아니다. 올바른 사상과 철학이 충만한 나라이고 자기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보살들이 사는 나라인 것이다. 따라서 이 나라에 구도자가 넘쳐나고 구도자의 향기가 피어나면 결국 그들의 정신과 철학이 모든 사람들에게 중생의 사고를 접고 보살로 태어나게 하기에 이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고 희망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제, 그 시간은 성스럽고 놓칠 수 없는 구도의 여정이자 미래를 기약하는 산고의 고통, 그 진한 죽음의 시간인 것이다. 내가 죽어야 진정 내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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