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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6대 달라이라마가 애인에게

기자명 이재형
내게 그대의 날개를 빌려주오, 흰 두루미여!
나는 리탕으로 더 가지는 못하리.
그러나 거기서 다시 돌아오리라.


피살 앞두고 다음 환생지 예견

술-여인 사랑한 ‘괴짜’
그가 지은 수많은 詩
티베트인 아직도 애송


지혜와 자비의 상징 달라이라마. 티베트인들은 그를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환생을 거듭하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믿는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14대를 비롯해 모든 달라이라마는 거룩하고 신성한 존재로 추앙 받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제6대 달라이라마인 창양 갸초(1683~1706)는 여느 달라이라마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조용한 도량보다는 시끄러운 저자거리를 좋아했고, 부처님과 경전보다도 술과 여인 그리고 시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위의 짤막한 글은 창양 갸초가 몽골군의 포로로 끌려가는 도중 그의 애인에게 보낸 편지로, 이 글을 마지막으로 그는 죽임을 당한다. 비운의 달라이라마 창양 갸초가 환생자로 확인된 것은 그의 나이 이미 15세에 이르렀을 때다. 다른 달라이라마들이 예닐곱살 이전에 모두 달라이라마로 공표되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늦은 나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창양 갸초의 전신(前身)이었던 제5대 달라이라마 롭상 갸초는 지금까지도 ‘위대한 5대’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분열됐던 티베트를 통일시키고 중앙정부를 강화했으며 달라이라마 중심의 국가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롭상 갸초는 그가 생의 마지막 사업으로 추진했던 포탈라궁 완공은 끝내 보지 못한 채 “포탈라궁이 완성될 때까지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입적한다. 이로 인해 섭정이었던 상게 갸초는 15년간 그의 죽음을 철저히 은폐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달라이라마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호시탐탐 티베트를 노리던 청나라와 몽골이 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섭정은 부랴부랴 제5대 달라이라마의 열반을 알림과 동시에 제6대 달라이라마를 찾아 나섰다.

이렇게 해서 뒤늦게 발견된 창양 갸초에게는 이미 세속의 친구들과 연인이 있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가 된 이후에도 생활태도는 큰 변화가 없었다. 궁궐을 빠져나와 서민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술과 여자를 가까이 했다.

‘어여쁜 임을 따르려니/ 깨달음의 길 걷기 힘들고/ 깊은 산 속에서 수행하려니/ 임을 그리는 한 조각 마음이 걸리네.’ ‘지성을 다해 떠올리는 부처님 얼굴은/ 도무지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데/ 생각지 않으려는 임의 얼굴은/ 더욱 더 또렷이 떠오르네.’

이런 ‘괴짜’ 달라이라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비난의 목소리도 커졌다. 특히 청나라와 몽골에게 티베트 정치에 개입할 빌미를 주었고, 이들 두 나라는 창양 갸초가 달라이라마의 자격이 없다며 폐위시키려 했다. 그 후 그는 몽골군에 의해 붙잡혔지만 그 때 함께 노래 부르던 많은 백성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창과 칼을 들었다. 그러나 양측이 대치한 상황에서 사상사가 생길 것을 우려한 창양 갸초는 스스로 몽골군에 몸을 내주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백성들은 이렇듯 안타깝게 죽어간 창양 갸초를 잊지 못했고, 오늘날까지도 그가 지은 시들은 많은 티베트인들에 의해 애송되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지금까지도 그가 달라이라마로 확신하고 있으며, 그의 특이한 행동 또한 중생구제의 한 방편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제7대 달라이라마는 창양 갸초가 마지막 편지에 자신이 다시 돌아오겠다던 티베트 동부의 리탕에서 발견됐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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